‘오월의 청춘’ 여운 남았다면…‘오월의 달리기’ [권해요]

‘오월의 청춘’ 여운 남았다면…‘오월의 달리기’ [권해요]

기사승인 2021-06-09 07:00:04
명수와 정태는 합숙소를 몰래 빠져나갔다가 시민들에게 총을 쏘는 군인을 보고 겁에 질린다. 사진=KBS2 ‘오월의 청춘’ 방송화면.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1980년 5월, 광주.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인 명수(조이현)는 여인숙에서 합숙하며 전국소년체전을 준비 중이다. 하루는 동갑내기 친구 정태(최승훈)와 몰래 만화방에 갔다가 죽을 고비에 처했다. 군인 몇이 만화방으로 쳐들어와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 패더니, 거리에선 숫제 총질까지 한 것이다. 가까스로 합숙소에 돌아온 명수는 친구들에게 북한에서 군인이 내려왔다고 떠든다. “인민군 맞당께. 우리나라 군인이 왜 우리나라 사람한테 총을 쏴야.” KBS2 월화드라마 ‘오월의 청춘’ 속 한 장면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오월의 청춘’이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1980년 5월18일 직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을 앞둔 지난달 초 방영을 시작해 4~5%(닐슨코리아 기준) 안팎의 시청률을 이어왔다.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저마다의 운명을 향해 달려가는 명희(고민시), 희태(이도현), 수련(금새록), 수찬(이상이) 네 청춘의 이야기는 안방극장을 울리며 시청자에게 호평 받았다.

‘오월의 달리기’(김해원 글·홍정선 그림) 표지. 사진=푸른숲주니어 제공.
‘오월의 청춘’은 김해원 작가가 쓴 어린이 소설 ‘오월의 달리기’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 소설 주인공은 명수. “뛰는 기 좋아서” 달리기 선수가 된 명수는 전남을 대표해 전국소년체전에 나갈 참이다. 매일 이어지는 훈련이 지옥처럼 힘들어도 명수는 국가대표가 돼 아버지의 자랑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문다. 합숙소에서 만난 정태, 진규, 성일과는 꿈과 땀을 함께 나누며 우정을 쌓는다. 광주로 들이닥친 군인들은 그런 명수에게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긴다.

1980년 6월10일 강원 춘천에선 전국소년체전이 열렸다. 소설 속 명수가 출전하려던 바로 그 대회다. 당시 전두환이 이끌던 군부 세력은 광주에서 벌인 시민 학살극을 은폐한 채 춘천에서 잔치판을 벌였다. 작가는 이런 사실을 기사로 접한 뒤 ‘오월의 달리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5·18 당시 초등학생으로 광주에서 합숙 생활을 했던 육상 선수를 직접 만나는 등 1년여 동안 취재해 소설을 완성했다.

소설은 어린이의 눈을 통해 군부 독재 세력이 벌인 참상을 고발한다. 시민을 조준하는 군인을 봤다는 명수의 말에 합숙소 친구들은 ‘군인들 뒤에 더 나쁜 악당이 있을 것’이라며 머리를 맞댄다. 이 장면은 드라마에서 다음과 같은 대사로 되살아났다. “군인 아저씨들이 왜 갑자기 악당이 된 거여?” “아야, 마징가 제트에서도 진짜 악당은 세계 정복할라 한 헬 박사잖애. 군인들도 뒤에서 조종하는 진짜 악당이 있지 않겄냐.” 명수에게 총구를 겨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뒤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소설 속 어느 군인의 고백은, 군부 세력의 광기가 만든 희생양이 광주 시민들에게만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에둘러 보여준다.

그렇다고 ‘오월의 달리기’가 절망으로만 가득 찬 건 아니다. 드라마가 수련을 비롯한 대학생 운동가들에게 화면을 내줬듯, 소설에선 박 코치, 미스터 박, 정태 형 등을 통해 서로 돕고 저항하며 희망을 만들어 가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른스러운 듯 보여도 남모를 고민을 가진 정태, 언제나 쾌활한 진규, 적재적소에 명언을 곁들이는 성일 등 어린이 주인공들의 개성이 독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오월의 청춘’이 남긴 여운이 열병처럼 남아 있다면, ‘오월의 달리기’로 다시 명수를 만나보길 권한다.

wild37@kukinews.com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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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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