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빛도, 소리도 사라졌다. 영화 ‘미드나이트’(감독 권오승)는 어두운 밤 청각장애인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상을 그렸다. 앞뒤 가리지 않고 쫓아오는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표적이 된 주인공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는 아무도 도움주는 사람 없는 밤거리를 우리 사회의 무관심으로 은유하며 관객이 답답함을 온몸으로 느끼도록 떠민다.
‘미드나이트’는 어머니와 제주도 여행을 꿈꾸며 청각장애인 텔레마케터 경미(진기주)를 함정에 빠뜨리며 시작한다. 귀가길 우연히 위기에 처한 소정(김혜윤)을 목격한 경미는 그를 돕기로 결심하지만, 거꾸로 자신이 연쇄살인마 도식(위하준)의 목표가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함께 위험에 빠질 것을 예상한 경미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기 시작한다.
빠르면 30분 안에 끝날 영화다. 경찰 도움을 받거나 소정의 오빠 종탁(박훈)에게 의지할 수도 있다. 아니면 길에 아무나 붙잡고 사정을 설명해 당장의 생존을 도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103분 동안 이어지는 건 영화가 만든 트릭 때문이다. 영화는 도식이 경찰에 잡히지 않고 살인과 폭력을 계속 저지를 수 있는 여러 이유를 하나씩 제시한다. 결국 영화는 도식의 입장에서 경미를 토끼몰이 하는 과정을 길게 보여준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폭력이 유독 아프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미드나이트’는 모든 일의 원인이 사람들의 무관심에 있다고 말하려 한다. 경미가 느끼는 소통의 한계와 그로 인한 답답한 심정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의도는 나쁘지 않다. 다만 메시지를 영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만들어낸 억지스러운 이야기처럼 보인다. 불편한 상황을 자초한 원인이 무능력한 경찰과 무심한 시민들으로 보여야 하지만, 정작 영화 속 상황을 통제하는 감독과 제작진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은 중반부부터 이건 현실이 아닌 어떤 메시지를 위한 영화적 상황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반복되는 살인범의 연기는 지나치게 잘 먹히고, 아무리 골목을 헤매도 거리엔 단 한명의 행인도 없다. ‘미드나이트’의 공간이 영화 ‘트루먼 쇼’(감독 피터 위어)처럼 이야기를 위한 가짜 무대라는 확신에 이른다.
2011년 개봉한 김하늘 주연의 영화 ‘블라인드’(감독 안상훈), 혹은 최근 2편으로 돌아온 할리우드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존 크래신스키) 시리즈가 떠오르는 영화다. 눈, 귀 같은 신체 일부 장애를 가진 인물이 생명의 위협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 영화들은 장애를 연민하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른 쪽의 재능을 보여주거나 각 세계의 규칙을 이해하고 돌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미드나이트’는 쫓기고 도망가는 모습이 이어진다. 흥미로운 스릴러로 감상하기엔 어딘가 부족하고 불편하다.
오는 30일 티빙과 극장 동시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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