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쿠키뉴스는 국내 산업 발전의 자양분이자 경쟁력의 밑바탕이 돼 왔고 앞으로도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명장을 찾아서’ 연재는 우리나라 산업 발전을 위해 묵묵히 산업 현장을 밝혀 온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발병 후 유통가엔 큰 변동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인테리어 산업 호황이다. 감염 우려로 외출이 줄어들자 재택 체류 시간이 늘면서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공사 수주가 급증해 시공업자들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활기에 업계는 당황했지만 한샘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시공 중심엔 20년 인테리어 외길을 걸어온 김문섭(51) 명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르륵 드르륵”
7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의 한 아파트 시공 현장에서는 드릴 작업이 한창이었다. “틈이 안 맞는다. 드릴 갖고 와라.” 현장 작업은 김 명장의 진두지휘 하에 이뤄지고 있었다. 소비자를 만족시키긴 위해서는 김 명장의 최종 점검이 필수다.
“오늘 어려운 약속 잡으신 거예요. 요새 인테리어 주문이 많이 밀려있는데, 한샘 영업맨들 사이에서 이 선생님 모시기 위해 안달이 나 있어요. 인테리어 달인이시잖아요. 선생님께 시공 맡기면 컴플레인이 없어요.” 현장에서 만난 서초·방배 권역 담당 한샘 대리점 관계자는 김 명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김 명장의 시공 소비자 만족도는 그가 인테리어 달인임을 증명한다. 그는 한샘 내부에서 매우만족률(고객 만족도 3개년 평균실적, 10점 만점에서 9점 이상 선택한 비율) 98%를 달성한 시공업자다.
‘키친바흐’는 한샘이 운영하는 고가 부엌 브랜드 제품이다. 시공과 제품을 다루는 역량이 중요한 라인이라고 한샘 관계자는 설명했다. 키친바흐 부엌 상품을 지정 시공하는 경우는 연평균 약 900여건이 발생하는데, 김 명장의 작년 키친바흐 지정시공 실적은 75건이다. 전국 키친바흐 지정시공에서 약 8%를 차지하는 규모다. 그만큼 베테랑이라는 소리다.
“한샘에서 제일 인기 있는 시공 전문가를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이날 기자가 건넨 인사에 김 명장은 “20년 이 일만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니느냐”며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공을 마무리 짓고 간이 테이블에 앉은 김 명장은 20년 인테리어 인생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시작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가 금융 위기를 겪던 시절 김 명장이 당시 재직하던 건설회사도 경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새 일을 구해야 했는데, 당시 한샘 시공 현장에서 근무하던 지인의 추천에 시공 업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고 김 명장은 설명했다.
“처음으로 나갔던 시공 현장을 잊지 못해요.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었는데 뚝딱 주방이 만들어지더라고요. 굉장한 쾌감을 경험했어요. 그 추억으로 지금까지 인테리어를 손에서 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는 과거를 회상했다.
궂은일은 모두 초짜 시공업자의 몫이었다.
“처음으로 시공 일을 시작하는 사람 치곤 많은 나이었어요. 현장 물건 나르기부터 더 어린 선배들의 잔심부름까지. 그땐 진짜 힘들었죠.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려면 참을 수밖에 없잖아요.” 인테리어 업계에서 악바리 근성으로 엉덩이를 붙였다며 그는 힘들었던 초보 시절을 털어놓았다.
일을 한창 배우던 시절, 그에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아찔한 경험도 있었다.
“시공을 의뢰한 집에 도착해서 자재를 내렸죠. 작업 전 자재가 잘 맞을까 실측을 하는데 시공의뢰서에 적힌 집 치수가 딱 일치하더라고요. 의심도 안 하고 침실 붙박이장을 만들기 시작했죠.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이 도착해서 ‘이게 무슨 짓이냐’며 따져 묻기 시작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다른 집에서 붙박이장을 만들고 있던 거예요. 아파트 동수를 잘못 찾아갔던 거였죠. 거기도 마침 인테리어 시공을 맡긴 집이었던 거예요. 고객과 약속한 시간이 있었는데 공사 시간도 맞추지 못하고 실수로 작업한 현장 붙박이장도 철거해야 했죠. 그 이후론 주소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비로소 최근에야 인테리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김 명장은 가장 보람 있는 순간으로 ‘마지막 고객 평가’를 꼽았다.
“무거운 자재도 수시로 옮겨야 하고, 자재도 자르고 박고 하다 보면 먼지도 많이 마시게 되죠. 시공 일자를 맞춰드리기 위해 허리 펼 새 없이 일하고 나면 힘든데요. 마음에 든다는 고객님의 대답을 들으면 피로가 싹 물러가는 느낌이에요. 이 맛에 일하죠.” 보람찬 순간이 떠오른 듯 그의 얼굴엔 곧 생기가 돌았다.
인테리어에 인생 전부를 바친 김 명장은 최근 고민이 생겼다. 국내 인테리어 업계를 지켜줄 젊은 인재 유입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시도하는 도전자는 많은데, 얼마 견디지 못 하고 몇 달 사이 나가는 이들이 많아 국내 시공업계가 지켜질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날카로운 장비와 무거운 자재가 많아 현장에서는 사소한 실수가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어요. 신경이 곤두서 있어 일할 때에는 예민한 분위기일 때가 많아요. 가끔 짜증 섞인 호통이 오가기도 하죠. 그럴 때면 제 초보 시절을 떠올리려고 해요. ‘나도 그랬었지’하면서 먼저 이해하려고 해요.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면 좀 더 오래 함께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진희야?’” 시공현장에 파견 나온 2년 차 시공업자 후배에게 김 명장은 건네 물었다.
명장의 꿈은 스스로 꾸린 시공 브랜드를 갖는 것이다.
“시공 팀 구성원이 자주 바뀌어요. 처음 만난 팀원이면 합을 맞추는 데에 시간이 더 걸리죠. 자주 함께 일해 본 사이라면 합이 잘 맞아 시공 시간이 단축되고 또 좋은 퀄리티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죠. 함께 움직이는 팀을 꾸리고 싶어서 제 시공 브랜드를 갖고 싶은 거예요.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은 마음도 커요. 후배들에게 제 노하우를 많이 알려주고 싶어요.” 반짝이는 눈으로 소박한 꿈을 전한 김 명장은 오늘은 아무래도 후배에게 더 알려줄 것이 있는 것 같다며 옆에서 나지막이 마지막 나사와 고군분투 중인 후배 곁으로 곧 발길을 되돌렸다.
smk5031@kukinews.com / 사진 = 박태현 기자 pth@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