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김은빈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자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그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은 지난 20일 대구를 찾아 박근혜 씨 사면에 대해 사실상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박근혜 씨) 수사에 송구한 부분도 없지 않다.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다. 저 역시 그런 국민 심정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며 국정감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윤 전 총장의 소신 행보와는 다른 모습이다. 윤 전 총장은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수사팀장으로서 탄핵의 법적 근거를 제공한 장본인이다.
집토끼를 잡기 위해 과거와 입장을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지역 민심을 노린 ‘메시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해 ‘대구 봉쇄론’을 거론됐던 것을 돌아보며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윤 전 총장의 정치적 지향점에 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윤 전 총장이 장외에 있는 이유는 보수 진영에 무언가를 더하기 위해, 중도 확장성을 위한 것이라는 게 공통 의견인데 (민란 관련) 발언은 저희 중에서도 오른쪽으로 간다”며 “방향성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총장이 ‘안철수 시즌2’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확고한 정치 철학이 부족하기 때문에 ‘갈팡질팡’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은 안 대표와 닮은 지점이 있다. 윤 전 총장은 검찰, 안 대표는 기업인 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외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지지율 1위 대선주자로 등판했다.
화려한 등장에 비해 ‘정책 비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안 대표는 ‘제3세력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지만 이에 걸맞는 정교한 정책 대안은 내놓지 못했다. 윤 전 총장 역시 공약 제시보다는 정부 비판에 초점을 두고 메시지를 내고 있다.
중도 외연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제3지대에 머무는 것 역시 비슷하다. 입당을 미루면서 기성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다. 실제로 선거 캠프 사무실 위치를 여의도가 아닌 곳에 차린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여의도에 선거 캠프를 차리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안 대표는 2012년 “여의도 정치에서 벗어나겠다”며 서울 종로구 ‘공평빌딩’에 캠프를 꾸렸다. 윤 전 총장도 서울 광화문 이마빌딩에 사무실을 차렸다.
결국 정치권에선 윤 전 총장이 안 대표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 대표는 22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여의도 정치에 숙달된 분들과 거리가 있는 분들이 보통 여의도 아닌 데 캠프를 차리려고 한다. 정치를 하려면 여의도 한복판에서 겨뤄야지 여의도를 회피하면서 정치하는 분들은 대부분 성과가 안 좋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 전 총장이 안철수 대표가 과거 정치에 미숙했을 때 했던 판단과 비슷하다”고 혹평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지난달 16일 “안 대표가 사실 윤 전 총장 1기다. ‘안철수 신드롬’이 점점 저물었던 이유가 모호한 화법 때문에 그렇다. 윤 전 총장도 화법이 뚜렷하지 않다. 안 대표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 쓴소리 했다.
실제로 윤 전 총장의 대권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보인다. 상승세를 탔던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최근 ‘주춤’하는 모양새다.
22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 20% 선마저 붕괴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19~21일 전국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대선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은 1%p 떨어진 19%를 기록했다. 여권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7%로 무려 8%p 차이가 났다.
이에 대해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22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높은 지지율을 추동하기 위해선 이를 받칠 수 있는 정치적인 자질이 필요하다. 그런데 윤 전 총장과 안 대표는 자기만의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윤 전 총장이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정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안 대표처럼 스스로 주저앉는 방식으로 갈 수 있다”며 “지금과 같은 행보를 보인다면 대선 완주도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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