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화려한 볼거리, 엉성한 메시지…‘마리 앙투아네트’

[쿡리뷰] 화려한 볼거리, 엉성한 메시지…‘마리 앙투아네트’

기사승인 2021-07-30 06:00:54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억울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남편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그는 오랜 시간 사치와 환락으로 국가를 파탄 낸 악녀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에 관한 소문 대부분이 거짓으로 드러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혁명 세력에겐 공공의 적이 필요했다. ‘외국인 여성’인 마리 앙투아네트(그는 오스트리아 출신이다)는 모두가 미워하기에 적합한 대상이었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둘러싼 거짓 소문을 깨부수려 애쓴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거리의 빈민 마그리드 아르노는 왕실과 귀족이 참석한 파티에서 빵을 훔치려다 발각된다. “먹을 빵이 없다”고 소리치는 마그리드에게 이런 말이 날아와 꽂힌다. “빵이 없다고? 그러면 케이크를 먹어.” 깔깔대며 조롱하는 이는 왕비가 아닌 귀족. 작품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으로 잘못 알려진 문장을 귀족의 대사로 설정해 ‘사치스럽고 무지한 왕비’라는 허구의 꺼풀을 벗겨낸다.

대신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그리드 아르노의 대립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고자 한다. 화려함 속에 묻혀 사는 왕비에게도 고뇌는 있다. 그는 스웨덴 귀족 악셀 폰 페르젠 백작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고, 왕권을 노리는 귀족들의 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그와 대척점에 선 마그리드 아르노는 가진 자들을 향한 분노로 가슴이 뜨겁다. 그는 야심 찬 정치 운동가 자크 에베르, 왕위를 노리는 오를레앙 공작과 손잡고 왕실을 공격한다. 이들은 선동과 거짓을 무기로 민중을 추동한다.

작품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쓴 오명이 여성 혐오와 외국인 혐오에서 비롯한 것임을 에둘러 드러낸다. 자크 에베르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시를 짓고 마그리드 아르노도 비판 없이 이를 수용한다. 오를레앙 공작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치스러운 여왕’으로 프레이밍하는 한편, 페르젠 백작과의 염문설을 뿌리며 성적 모욕을 부추긴다. 왕비가 당시 프랑스와 적대 관계였던 오스트리아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를 배척하는 근거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창녀’ ‘암캐’ 등 여성을 성적으로 비방하는 표현이 지나치게 자주 반복된다. 이런 표현을 쓰는 혁명군과의 비판적 거리두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오히려 작품이 여성 혐오를 재현한다는 인상을 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대체로 수동적이고 연약하게 표현된다.

무엇보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는 과정이 엉성하다. 불평등한 계급 사회에 분노하고 약자들을 돌보던 마그리드 아르노가 적의와 질투심에 눈멀어 마리 앙투아네트를 끌어내릴 계략에 가담한다는 흐름이 엉성하다. 그가 각성한 계기가 왕비에 대한 사적인 감정과 핏줄 때문이라는 설정도 엉성하다. 프랑스 혁명을 오를레앙 공작 개인의 욕망으로 인한 산물로 단순화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로코코 시대를 보여주는 화려한 의상과 가발은 볼거리다. 360도 회전무대로 표현한 호화 궁전,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꼈다는 트리아농 정원도 아름답다. 초연, 재연에 이어 또 한 번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맡은 배우 김소현은 카리스마와 처절함을 오가며 호연을 보여준다. 페르젠 백작을 맡아 처음 뮤지컬에 도전한 그룹 NCT 멤버 도영은 반듯한 외모와 미성으로 순정만화 속 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마그리드 아르노를 연기한 배우 김연지는 1막 마지막 곡 ‘더는 참지 않아’에서 솔풀한 보컬을 들려줄 때 특히 빛난다. 오는 10월3일까지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상연.

wild37@kukinews.com /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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