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오타니 쇼헤이는 지난 2018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데뷔 시즌부터 오타니는 ‘투타 겸업’ 돌풍을 일으켰다. 타자로 104경기에 출전해 326타수 93안타 타율 0.285 22홈런 61타점을 기록했다. 투수로는 부상 여파로 많은 경기를 출전하진 않았으나 10경기 4승 2패 평균자책점 3.31로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오타니는 데뷔 시즌에 신인왕을 수상하며 기량을 인정받았다.
찬란해 보이던 그의 미래는 부상으로 변곡점을 맞았다. 2018년 10월 오른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존 수술)을 받으면서 2019시즌에는 타석에만 나섰다. 지난해에는 44경기에 출전 타율 0.190 7홈런 24타점으로 최악의 부진을 겪었다. 마운드에선 2경기에 출전해 1.2이닝 평균자책점 37.80으로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오타니가 ‘투타 겸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야구의 전설 장훈은 “투수 쪽이 9대1로 기대된다. 지금처럼 적당히 하는 타격으로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반면 투수로는 100년에 한번 나올 선수”라며 “투구폼도 타자들이 치기 어렵게 내리꽂는 스타일이다. 나라면 투수에 전념하도록 할 것”이라고 투수에만 집중하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타니는 올해 보란듯이 투타 양면에서 맹활약 중이다. 26일(한국시간) 기준 타율 0.267 88타점 40홈런 장타율 0.628 OPS(장타율+출루율) 0.993을 기록했다. 타율을 제외한 나머지 기록은 메이저리그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다. 마운드에서도 8승 1패 평균자책점(ERA) 3.00 이닝당출루허용률(WHIP) 1.06으로 상위권 투수 스탯을 선보이고 있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소리까지 듣던 그는 어떻게 한 시즌 만에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게 된 걸까.
◇ 하체 보강하자 최정상급 타자로 성장
오타니의 부진은 연달은 부상이 주 이유였다. 2018시즌에 팔꿈치 부상이 도지면서 시즌 종료 후 인대 접합 수술(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타자로만 뛰던 2019년에는 시즌 말미에 왼쪽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다시 시즌아웃 됐다. 이후 2020시즌 투수 복귀를 시도했지만, 2경기 만에 굴곡근에 염증이 생기면서 이후엔 타자로만 나섰다.
연달은 부상과 수술로 오타니의 몸은 이전에 비해 밸런스가 망가져 있었다. 이 중 하체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하체가 받쳐주지 못하니 스윙 메커니즘도 무너졌다.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은 “지난 시즌 오타니는 약해진 하체 탓에 발이 자꾸 타석을 벗어났다”라며 “조 매든 감독이 다리를 묶어야 하겠다고 농담할 정도였다”고 할 정도였다.
이를 고치기 위해 오타니는 지난 겨울 몸무게를 늘리고 하체 근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최적의 몸 상태를 만들기 위해 식단도 바꿨다. 하루에 7끼씩 먹으며 체계적으로 벌크업을 시도했다. 95㎏였던 체중을 체계적으로 7㎏ 이상 늘려 하체 힘을 늘렸다.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야구 연구소 ‘드라이브 라인’에서 피칭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타격폼을 수정하기도 했다. ‘드라이브 라인’은 최근 클레이튼 커쇼, 트레버 바우어, 켄리 잰슨 등 유명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받은 유명 훈련 센터다.
영상과 데이터도 적극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타니는 자신의 몸에 맞는 훈련 방법을 찾는 데에 유튜브 영상을 활용했고, 데이터를 활용해 수년간 이어오던 비시즌 훈련 계획과 방법을 모두 바꿨다. 이 과정에서 타격 시 뒷발이 흔들리는 잘못된 습관을 발견했고 이를 바로잡았다.
철저한 준비로 하체 보강에 성공한 올해는 신인왕 시절 타격 기량을 완벽히 되찾은 것은 물론 한층 더 발전했다. 타구는 더 빨라졌다. 평균 타구 속도는 94마일(약 151.2㎞)로 1.5마일 가까이 빨라졌고 최고 타구 속도는 무려 119마일(약 191.5㎞)에 달한다. 이는 리그 상위 1%에 달하는 기록이다.
타격의 발사 각도도 올라갔다. 올 시즌 오타니의 타격 평균 발사 각도는 16.4도로 2018년보다 4도 이상 올랐다. 타구가 빨라지고 발사 각도가 올라가니 자연스레 장타가 많아졌다. 그가 홈런 1위인 이유도 이에 있다.
강해진 하체로 오타니는 주루에서도 재미를 보고 있다. 지금까지 19개의 도루를 성공했는데, 이는 MLB 데뷔 후 가장 많은 수치다. 오타니의 스프린트 스피드는 초당 28.8피트에 이르는데, 상위 8%에 달하는 기록이다.
◇ 완성형 투수 돼가는 오타니
투수 오타니의 가장 큰 매력은 강속구다. 100마일(160.9㎞)을 넘는 패스트볼과 평균 87.9마일(141.5㎞)의 고속 스플리터로 타자들을 압도한다. 빅리그 데뷔 당시에 타자보다 투수로 성공할 거란 예측이 더 많았다.
다만 오타니는 제구가 다소 불안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시즌 초반에는 9이닝 당 볼넷 수가 9.2개에 달할 정도로 제구에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제구가 정교해지고 있다. 풀파워로 공을 던지던 과거와 달리 힘을 조금 줄여 제구력을 끌어올렸다. LA 지역지 오렌지 카운스티는 “5월부터 오타니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이 94.4마일(약 151.9㎞)로 떨어졌지만 9이닝 당 볼넷이 2.7개로 줄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후반기 들어가면서 마운드에서도 점점 리그 정상급 기록을 보이고 있다. 오타니는 후반기에 7경기에 등판해 5승 무패 ERA 2.12를 기록했는데 이는 아메리칸리그(AL)에서 3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다승·평균자책점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구사하는 구종도 늘었다. 이전에는 패스트볼과 스플리터를 주로 던지는 투 피처(2개의 구종으로 공을 던지는 투수)였던 오타니는 올해를 앞두고 슬라이더의 위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베이스볼 서번트에 따르면 오타니의 슬라이더의 피장타율이 0.360에서 0.299까지 줄었다.
오타니는 슬라이더와 함께 평균 87마일(140㎞)대 커터를 장착하여 약한 타구를 만들어내 맞춰 잡는 피칭을 하기 용이해졌다. 기존의 포심과 스플리터에 슬라이더, 커터 구종을 주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 타자들이 상대하는 데 어려워졌다.
상대적으로 타석에서의 퍼포먼스에 미치지 못할 뿐이지, 현재 에인절스의 1선발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고 있는 오타니다.
◇ 투타겹업 오타니, 사이영상과 MVP 동시 석권 가능할까
현재 오타니는 아메리칸리그 MVP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 라이벌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오타니의 뒤를 바짝 쫓고 있지만 현재의 분위기가 그대로 간다면 2000년 이치로 스즈키 이후 일본인 MVP 탄생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 MLB닷컴의 렛 볼린저 기자는 “오타니는 과거에 선발 등판 전날과 다음날 라인업에서 제외되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거의 모든 경기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고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플레이를 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타니가 가장 유력한 아메리칸리그 MVP 선두주자다”라고 언급했다.
다만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 수상은 쉽지 않은 분위기다. 뛰어난 스탯을 뽑아냈지만 오타니는 현재 105이닝을 소화했는데, 규정 이닝까지는 57이닝이 남아있다. 또한 오타니는 다른 투수들처럼 4일 휴식 등판이 없었기 때문에 아메리칸리그에서 자신보다 높은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을 기록 중인 투수들 중에 가장 이닝 소화 수가 떨어진다.
미국 매체 스포팅 뉴스는 26일 “오타니는 현시점에서 기본적으로 MVP를 수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런 오타니가 올해 사이영상도 수상할 수 있을까? 좋은 대답은 가능하지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오타니가 남은 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00 이하를 기록하거나, 노히터 또는 14탈삼진 경기를 한다면 가능성은 있다”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kch094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