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거센 비판’에… 與, 결국 언론중재법 강행 ‘잠시 멈춤’

국내외 ‘거센 비판’에… 與, 결국 언론중재법 강행 ‘잠시 멈춤’

개정안 문구 모호해 거센 비판
민주당, 내부 불만 해소가 숙제

기사승인 2021-08-31 16:41:51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협의체 구성, 9월 27일 본회의 상정 등의 합의문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쿠키뉴스] 최기창 기자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국내외의 다양한 비판 속에서도 ‘강행’을 내비쳤던 더불어민주당이 결국 언론중재법 ‘8월 처리’ 카드를 접었다. 이제 언론중재법 통과 여부는 다시 민주당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31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했다. 양당 원내대표는 우선 언론중재법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양당이 추천한 전문가 2명과 국회의원 등 총 8명으로 꾸린다. 

다만 민주당이 강하게 밀어붙였던 ‘8월 처리’는 결국 무산됐다. 두 당은 다음 달 26일까지 논의를 거친 뒤 다음날인 27일 본회의에 안건을 상정하기로 했다 .

우선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강행처리에 관한 거센 비판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당초 속도전을 내세우며 8월 처리를 주장했지만 ‘독선’ 이미지만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외 단체들이 대거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강행의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법사위에서 건드린 조항 역시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해석이다. 

가장 큰 문제가 됐던 부분은 개정안에서 규정하는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고의‧중과실’로 추정하는 내용을 법안에 삽입한 것도 논란이 됐다. 김신 김앤컴퍼니 변호사는 “명백한을 삭제하면서 언론은 ‘명백하지 않더라도’ 고의‧중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됐다. 다소 불확실한 사실 혹은 입증 자료가 취재원의 진술에 의하여만 하는 경우에는 기사를 낼 수 없게 될 수 있다”며 “결국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가운데),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오른쪽), 김영배 민주당 의원이 25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허위 사실을 보도하는 것만으로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으로 명예훼손은 허위에 따른 평판 상의 피해가 발생해야만 성립된다. 허위 사실만으로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명예훼손도 아닌데 허위 사실을 보도한 것만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진 않다. 새로운 보도지침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언론계의 반발도 컸다. 추가 취재나 보도를 막기 위한 ‘입막음용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첫 번째 보도가 나오면 소송부터 제기해서 언론사 기자들을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과실 입증 책임이 사실상 언론사에 있다는 점 역시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김 회장은 “기자가 허위 사실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선 취재원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공익 제보자도 많이 줄어들어 권력형 비리 보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권력형 비리 보도를 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서 민주당이 고위공직자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이나 측근 등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 법의 맹점”이라고 평가했다.

전국언론인노동조합 역시 성명을 내고 “한 달 동안 속도전으로 진행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부실함이 이렇게 확인됐다. 개정안 폐기가 필요하다”며 “원점에서 미디어 피해구제 강화와 언론자유 보호를 위한 사회적 합의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언론 7단체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언론중재법 강행처리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외 언론계에서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관한 우려가 컸다. 언론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경없는기자회(사무총장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RSF)는 지난 25일 새벽 긴급 성명을 통해 한국에서 입법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철회를 촉구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언론자유를 감시하는 국제 비영리 단체로 2002년부터 매년 180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국가별로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 3명의 특파원을 파견 중이다.

세드릭 알비아니 국경없는기자회 동아시아 지부장은 성명서를 통해 “개정안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언론에 압력을 가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주관적일 수 있어서 국회의원들이 충분한 제도적 장치의 보장 없이 새로운 법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국제기자연맹(IFJ) 역시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이 법안의 폐지를 요구한다”며 “의사 결정에 관한 법률이 모호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성명서에서 “한국은 가짜뉴스 규제법 신설을 철회해야 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비판적인 보도를 위협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 부터),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 김승원, 김영배, 소병철 의원 등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신문협회(WAN-IFRA)는 이보다 앞선 지난 12일 “이 개정안은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이사회 역시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민주당은 해당 법률안에 외신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두고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조차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제 다시 공은 민주당으로 넘어갔다는 해석이다. 우선 당내 지지자와 의원들의 비판을 수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윤 원내대표의 비서실장인 김승원 의원조차도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병석~~ 정말 감사하다.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다만 윤 원내대표는 이날 여야 합의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가짜뉴스로부터 국민을 구제하기 위한 합의를 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법안 처리가 한 달 남짓 지연됐지만 협의를 통해서 원만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mobydic@kukinews.com
최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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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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