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왜 도망쳤을까요? ‘D.P’에는 그 이유가 끔찍할 정도로 잘 나와있습니다. 가혹행위 때문입니다. 괴롭히는 방법도 참 많은데, 이유가 다소 황당합니다. 코를 골아서, 만화를 좋아해서, 성격이 얌전해서, 나보다 후임이니까, 그냥 그래도 될 것 같아서… 물론 탈영 이유는 제각각이라지만, 집단 괴롭힘과 가혹행위가 대다수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얼마 전, 실제 D.P.로 복무한 예비역들과 서면으로 인터뷰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가혹행위는, 있었다고요. 슬프지만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미 뉴스를 통해 끔찍한 사례들이 숱하게 보도돼왔으니까요. D.P. 출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 아픈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부조리한 일들이 즐비합니다. 그래서 탈영병을 잡으러 가놓고도, 속사정을 들으면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한 인터뷰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이유 없는 탈영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탈영병의 주변 상황을 조사하다 보면 이 사람에게는 탈영 혹은 휴가 미복귀만이 탈출구로 느껴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스템이 변화되지 않으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탈출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요. 그리고 체포된 탈영병들은 대개 후련한 듯한 얼굴입니다. 저는, 이게 참 마음 아팠습니다.” 견디지 못해 탈영까지 감행해놓고도, 잡히고 나서 안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누군가 자신을 잡아주길 바랐던 건 아닐지, 일탈에 대한 죄책감이라도 느낀 건 아닐지… 인터뷰를 나누며 쿡기자 역시 그 대목에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방부는 ‘D.P.’의 인기가 탐탁지 않은 눈치입니다. 신랄하게 담긴 군대 내 부조리가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에 방영됐기 때문이죠.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이 잇따릅니다. 병영 예능과 한류 드라마가 포장해온 군대의 달콤한 환상이 산산조각 났으니 당연히 속이 쓰릴 수밖에요. 그렇지만 이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외면해서도 안 되는 현실입니다. 그동안의 방관이, 계급이란 위험한 권력을 먹고 자라는 가혹행위자들을 더욱 키워왔으니까요. 누구나 알면서 어느 누구도 아는 척하지 않는, ‘내리갈굼’이 관례로 포장되는 현실도 이제는 바뀔 때입니다.
지난 8일,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결산 심사에서 ‘D.P.’ 속 가혹행위에 대해 “지금의 병영 현실과 조금은 다른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하루 뒤인 9일, 국방부는 내년부터 D.P. 병사 보직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탈영병 체포 업무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고, 병사 대신 전문 인력인 간부가 잡는 것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어찌 됐든 변화는 시작된 것 같습니다. 군대 내부의 변화가 더욱 시급하겠지만요. 부디, 군인이 같은 군인을 잡으러 다니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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