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펜하’ 천서진, 제가 제일 미워하려 했어요” [쿠키인터뷰]

김소연 “‘펜하’ 천서진, 제가 제일 미워하려 했어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1-09-21 06:00:04
배우 김소연.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쿠키뉴스] 김예슬 기자 = 약 20년 만이다. 배우 김소연은 지난 2000년, MBC ‘이브의 모든 것’에서 허영미 역을 맡아 ‘응원받는 악역’이란 새 역사를 썼다. 그리고 2020년과 2021년, 1년 반에 걸쳐 방송된 SBS ‘펜트하우스’ 시리즈에서 악녀 천서진 역을 맡아 또 한 번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전무후무한 악행에도 대중의 지지와 관심을 받은 건, 김소연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최근 쿠키뉴스와 화상으로 만난 김소연은 이 같은 칭찬에 연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합니다”만 연발했다. 특유의 해맑은 모습은 천서진으로 열연한 지난 시간들과는 전혀 달랐다. 지난 2020년 10월, 시즌1 제작발표회에서 “희대의 악녀를 만들어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던 그는 자신의 말을 완벽히 지켜냈다. 김소연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브의 모든 것’이 생각났다고 회상했다.

“스물한 살에 ‘이브의 모든 것’을 찍었어요. 부족한 게 정말 많았죠. 이제는 마흔이 넘었으니 20년 동안 다져온 것들로 잘 표현해보자는 마음이 컸어요. 악역이 욕먹는 건 이미 한 번 겪어봤으니 나름 각오가 돼있었거든요. 그런데 제 기대보다 1억 배는 넘게 사랑받은 것 같아요. 미취학 아동들이 사인 요청을 하더라니까요! 얼떨떨한 기분이에요.”
SBS ‘펜트하우스’ 스틸컷. SBS ‘펜트하우스’ 제공

김소연에게 천서진은 이해 안 되는, 이해해서도 안 되는 악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천서진이 돼야 했다. 찬찬히 살펴본 천서진은 짠한 구석이 많은 인물이었다. 1년 반 동안 천서진을 연기하며 그의 감정에 동화된 김소연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대본만 봐도 눈물이 났다. 시즌1 15회에 나왔던 천서진의 광기 어린 피아노 연주 신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먹먹하단다. 반대로, 시즌3 5회에서 오윤희(유진)를 죽인 뒤 부르는 ‘하이 에프’ 성악 신은 저도 모르게 전율이 일었다. 천서진에 차근차근히 물들어갔지만, 늘 선을 그으려 노력했다.

“연기를 하며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자주 올라오곤 했어요. 하지만 천서진을 이해하려고 하진 않았어요. 천서진은 천서진일 뿐이니까요. 가정사가 있다 해도 이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없잖아요. 그래도 연기하는 동안에는 천서진이 하는 행동이 늘 맞다고 생각했죠. 작품이 끝나면 천서진을 내가 제일 미워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요. 누구보다도 천서진의 파멸을 응원했거든요, 제가.”

미워하려 했지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천서진의 서사가 탄탄해 더욱 매력을 느꼈다”고 돌아보던 김소연은 “이왕 맡은 악역을 더 완벽히 소화하고 싶었다”고 거듭 말했다. 육탄전부터 고성이 오가는 등 과격한 장면들은 자신감 없던 스스로를 극복하게 해준 극약처방이 됐다. 첫 시즌제 작품인 점도 김소연에겐 특별하게 와닿았다. 그렇게 ‘펜트하우스’는, 김소연에게 각별한 의미가 됐다.
배우 김소연. 제이와이드컴퍼니 제공

“제 전환점 중 하나가 바로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예요. 극악무도한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배우분들이 연기를 정말 잘하세요. 게다가 시즌을 거듭할수록 배우들이 더욱 진화하는 걸 보니 저도 시즌제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펜트하우스’는 배우로서 너무나도 값진 경험이에요. 몰입부터가 달랐거든요. 게다가 오랜만에 해본 악역이잖아요. 잘 해내고 싶어서 저의 장점들을 모두 쏟아부었어요.” 

서늘한 이목구비와 낮은 목소리, 강렬한 눈빛. 김소연은 ‘펜트하우스’에 들어가기 앞서 자신이 가진 것들로 손꼽힐 만한 악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바람대로 천서진은 시청자 뇌리에 박힌 악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다음 작품도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도전하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는 김소연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20년 전과 지금의 제가 이렇게나 달라졌잖아요. 작년과 지금의 제 연기 역시 다르고요. 몇 년 후에는 또 다른 제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면 또 다른 악역이 나올 수도 있고… 물론 상반된 캐릭터에 대한 욕심도 있어요. 웃긴 걸 좋아해서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고요. 주변에서는 앞으로 천서진을 넘을 수 있을까를 걱정해주시는데, 일단 해보고 매도 그때 맞아야지 싶어요. 천서진에 도전해서 이런 순간도 왔으니, 뭐든 다시 도전해봐야죠. 기꺼이!”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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