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안세진 기자 =“너무 답답해요. 당시 이 아파트 분양 경쟁률이 낮아서 저와 함께 제 동생도 들어왔거든요. 대출을 끼고 기존에 살던 전세는 정리 중에 있었는데 이같은 상황이 터지니까 매일 걱정만 쌓여갑니다”
김포 장릉 인근의 ‘왕릉뷰 아파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 철거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이 20만명 동의를 얻은 가운데, 문화재청이 공사 중지 명령을 받은 아파트 시공사를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황이다. 해당 아파트 수분양자들은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왕릉부 아파트? 어떤 일 있었길래?
지난달 6일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건설사 3곳을 경찰에 고발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 반경 500m 안에 높이 20m 이상 건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 개별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문제가 된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들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들 건설사의 아파트 대상지는 경기도 김포시 장릉 인근에 있다. 김포 장릉은 조선 제16대 왕인 인조가 부모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능으로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김포 장릉은 능침에서 바라본 전경이 풍수지리상 중요한 계양산인데, 현재 공사 중인 아파트가 계양산을 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여론도 싸늘했다. 이날 오전 11시 기준 ‘김포장릉 인근에 문화재청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합니다’ 국민청원은 20만9949명의 동의를 모았다. 지난 9월 17일 등록돼 10월 17일 청원이 마감된다. 이 기한 내에 동의수 20만명을 넘어서면 정부의 답변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청원 작성자는 “이미 분양이 이뤄져 큰 피해가 갈 것이기에 이 청원을 작성하는 저도 마음이 "무겁다”면서 “그러나 아파트 사업계획 승인에 앞서 이러한 사안을 검토하지 않은 지자체 및 건설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철거를 최소화하면서 문화유산 경관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좋을 것”이라며 절충안도 제안했다.
문화재청과 건설사, 책임 공방
사태는 책임론으로 불거지고 있다. 건설사들은 지난 2014년 인천도시공사로부터 택지 개발 허가를 받은 땅을 사들였고 2019년엔 인허가기관인 인천 서구청의 경관 심의를 거쳐 공사를 시작했으므로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현재 법원 집행정지 소송 결과에 따라 총 3개 단지 3400가구 중 대방건설 아파트를 제외한 2개 단지 12개동(979가구)의 공사는 중단된 상태다.
문화재청 측의 문제도 제기됐다. 당초 2019년부터 진행된 공사를 문화재청에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배현진 의원(국민의힘)은 문화재청이 김포 장릉 인근에서 무허가로 고층 아파트가 건설됐다는 사실을 지난 5월 인지했음에도 2개월 후인 7월 유네스코에 불법적 건설 사실이 없다고 허위 보고를 했다고도 지적했다. 이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 역시 문화재청이 2017년 변경된 규정을 지자체에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점 등을 지적했다.
인천도시공사도 2014년 이미 문화재 주변 환경을 직·간접적으로 변경해도 된다는 현상변경 심의를 통과했다고 설명한다. 인허가기관인 인천도시공사도 문화재청으로부터 2017년 변경된 사항을 제대로 전달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의 정상적인 고시가 있었다면 이런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수분양자들은 발만 ‘동동’
현재 건설사들은 문화재청이 요구한 건축물이 장릉 역사문화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개선안을 모두 접수한 상태다. 문화재청은 공식적으로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개선안에는 3개 건설사 모두 일부 층수나 일부 동, 또는 단지 완전 철거를 담은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수분양자들은 답답할 노릇이다. 주거 마련 계획에 따라 대출을 끼고 분양권을 얻어놓자 아파트 철거 논란이 불거진 셈이니까 말이다. 수분양자인 A씨(35)는 “언론 기사를 보면 죄다 문화재를 보호해야한다는 주장 하에 아파트 철거를 주장하고 있더라”면서 “물론 보존되어야 하는 건 맞지만 한 순간에 인생 주거 계획에 큰 차질이 오게 된 저희같은 사람을 배려해 개선안을 마련해줬으면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저희뿐만 아니라 입주 시기를 맞춰 기존에 살던 전세나 월세를 처분한 사람도 여럿 있을 것”이라며 “어느 쪽에 책임이 있냐를 따지기보다 서로 분양권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강구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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