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창고, 트렁크…쉴 곳을 고른다면 [1.5평의 권리①]

주차장, 창고, 트렁크…쉴 곳을 고른다면 [1.5평의 권리①]

-대형마트 주차장에 주저 앉아 쉬는 방문서비스 노동자들
-열악한 환경에 쉬지 못하고 틈틈이 차에서 쪽잠
-물류창고로 출근하는 노동자들, 주유소 눈치 보며 화장실 빌려 써

기사승인 2021-12-13 06:20:01

1.5125평. 서울시가 정한 1인 휴게 공간 적정면적입니다. 현실은 빠듯합니다. 9명의 노동자에게 주어진 공간은 1평 남짓입니다. 어떤 이는 계단 구석에서 또 다른 이는 곰팡이 슨 지하에서 숨을 돌립니다. 누군가는 묻습니다. 일하러 간 직장에 휴게실이 왜 필요하냐고요. 노동자는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에서 쉴 권리가 있습니다. 쿠키뉴스 특별취재팀은 열악한 휴게 공간을 돌며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뀌긴 할까요” 묻던 한 노동자에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답할 차례입니다.

*기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취재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방문서비스 노동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이소연 기자 

쪼그려있던 동료가 일어나며 연신 다리를 두드립니다. 주차 방지턱에 걸터앉아있던 다른 동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배송상품) 몇 개 있으세요?” “나는 15개” “난 21개” 동료들과 각자 물량을 확인, 업무를 준비합니다. 평범한 업무 대화이지만 제가 서 있는 곳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저의 출근지는 경기의 한 대형마트 지상 주차장 5층입니다. 방문서비스 노동자의 ‘사무실’이기도 합니다.



20년 동안 국내 한 렌탈 가전업체 소속 서비스매니저로 활동해왔습니다. 개인사업자와 다름없는 특수고용직으로 일했지만, 지난해 정규직이 됐습니다. 그러나 근무 환경은 더 열악해졌습니다. 특수고용직일 때는 지점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5월부터는 대형마트 지상 주차장으로 출근합니다. 

저와 동료들은 주차장에서 그날 배송할 제품을 정리, 각자의 차량에 싣습니다. 일을 마친 후 삼삼오오 모여 안부를 묻고, 밖에서 사 온 음료로 목을 축이기도 합니다. 10분 정도 쉬었을까. 각자 배송 지역으로 떠납니다.

방문서비스 노동자들이 자동차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가전통신노조 제공 

주차장에는 없는 게 많습니다. 잠시 몸을 기댈 의자가 없습니다. 비바람을 막아줄 창문도 없습니다. 사무실 출근 전 화장실에 무조건 들러야 합니다. 주차장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방문서비스 노동자에게 휴게 공간은 남의 이야기입니다. 일하면서 틈틈이 차에서 쉬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는 가족이 조심스레 묻더군요. 차가 다니는 공간인데 위험하지 않냐고요. 개장시간 전이라 손님이 오지 않지만, 마트 직원과 물류기사 차량이 주차장을 오갑니다. 조심해야 한다는 가족의 당부를 늘 새기며 출근합니다. 

경북의 한 물류창고. 방문서비스 노동자들의 ‘사무실’ 역할을 한다. 민주노총 전국가전통신노조 제공 

다른 지역 동료들은 대부분 물류창고로 출근합니다. 이곳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닙니다. 일부 동료는 “창고에서 어떻게 앉아있냐. 비바람은 어떻게 피하느냐”고 항의하기도 했죠. 회사에서 임시방편으로 천막을 보내줬다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할까요. 

경북의 한 물류창고에는 화장실이 없어 옆 주유소의 눈치를 보며 빌려 써야 합니다. 어디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화장실 한 번 편히 가는 게 소원이랍니다. 겨울에는 정수기가 얼어 물도 마시지 못 합니다. 저희가 정수기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노동자들의 몸을 데워줄 난방기구. 그러나 난방기구 뒤편에는 등유 등 화재 위험물질이 같이 적재돼 있다. 민주노총 전국가전통신노조 제공  

물류창고 곳곳에는 물품이 높게 쌓여있습니다. 혹시나 넘어지지는 않을지 아슬아슬합니다. 몸을 녹일 난방기구와 차량용 등유가 한 공간에 있기도 하죠. 다른 동료는 “가족 같은 회사라더니 이럴 수 있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휴게 공간이 없어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와 동료들은 바랍니다. 추운 겨울 몸을 녹이고, 잠시라도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휴게 공간을요. 조금 더 바란다면 환한 빛이 들어오고 동료들과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방문서비스 노동자들은 고객에게 항의를 듣고 욕을 먹는 것이 일상입니다. 다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휴게 공간에서 치유하고 일터로 밝게 웃으며 나가고 싶습니다.

[1.5평의 권리]
 ①주차장, 창고, 트렁크…쉴 곳을 고른다면
 ②감옥에 갇히면 이런 기분일까
 ③왜 맨날 계란프라이만 싸 오냐고요?
 ④노동자 수백명, 휴게실 의자는 7개
 ⑤19명이 샤워실 앞에 줄을 섰다
 [친절한 쿡기자]1.5평의 권리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이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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