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후보는 23일 여수광양항만공사 방문을 끝으로 1박 2일간의 호남 일정을 마무리했다. 전북 완주 수소충전소 방문을 시작으로 △김제 새만금 33센터 △광주 AI 데이터센터 △여수광양항만공사 등 지역 경제 살림과 밀접한 현장을 방문해 ‘각별한 지원’을 약속했다.
전북·전남 선대위 출범식 일정도 각각 찾아 정권교체를 향한 의지를 다졌다. 윤 후보는 23일 전남선대위 출범식에서 “김화진 전남선대위원장께서 호남 득표율 20%를 목표로 하셨는데, 나로선 10%든 15%든 좋다. 국민의힘이 호남인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해줄 수만 있는 당이라면, 호남인들의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전국 선거에서 대승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전북에서 전남까지 광폭 행보에 나서며 호남 민심 잡기에 돌입했지만, 윤 후보의 ‘입’이 이틀간의 공들인 일정을 깎아 먹는 모양새가 됐다. 22일부터 1박 2일 일정 동안 문제가 된 윤 후보의 ‘입’을 정리했다.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를 뿐만 아니라…”
그는 전날 오후 전북대 인문대학 최명희홀에서 45분가량 진행된 ‘윤퀴즈온더전북 with 석열이형’ 간담회를 가졌다. 두명의 학생 사회자가 사전에 준비한 질문을 번갈아 묻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관객석에 앉은 대학생이 손을 들어 추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행사 시작이 40분가량 지연된 탓에 추가 질문은 2개까지 밖에 할 수 없었다.
문제가 된 발언은 ‘n번방 방지법’ 관련 질문에서 나왔다. 한 학생은 “후보께선 ‘99개가 달라도 정권교체라는 1개만 같으면 같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n번방 방지법’, ‘차별금지법’ 등 자유를 침해하는 사람과도 함께할 수 있는가. 국민의힘이 통합되면서도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윤 후보는 “자유라는 것이 개인과 개인이 경쟁할 때 힘센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같은 링에 넣어놓고 무자비하게 싸우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자유는 나 혼자서 지킬 수 없다. 일정 수준의 교육과 기본적인 경제 역량이 있어야만 자유가 존재한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왜 나에게 자유가 필요한 것인지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발언이 가장 문제가 됐다. 윤 후보는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왜 개인에게 필요한지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개인이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취지였지만, 저소득층을 비하하는 뜻으로 해석돼 논란을 낳았다.
논란이 커지자 윤 후보는 행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그분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을 도와드려야 한다는 뜻”이라며 “가난한 사람이나 공부를 못 한 사람이든 자유인들이 연대해서 자유를 느끼게 하려면 그분들에게 여건을 보장하게, 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줘야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앱으로 실시간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때가 온다”
‘구인·구직앱’ 개발 제안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 후보는 대학생 간담회에서 “일자리 수요공급을 잘 매치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좀 더 발전하면 학생들이 핸드폰에 앱을 깔면 기업이 어떤 종류의 사람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실시간 정보로 얻을 수 있을 때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아마 여기 1~2학년 학생들이 계신다면 졸업하기 전에 생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앱 등 모바일 환경에서 구직정보를 얻는 것은 지금도 가능하다. 이에 윤 후보가 현재 기술환경 변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 후보 측은 AI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되는 기존과 다른, ‘새로운 앱’이라고 항변했다. 캠프는 “십년 전에도 가상 공간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가상 공간인 메타버스와는 차원이 다르다”며 “윤 후보의 ‘미래 앱’은 일자리 데이터가 통합돼있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의 구직 희망 직종이 분석돼 자동으로 일자리가 매칭되는 앱”이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도 이날 여수광양항만공사를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학생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학생에게 이해시키는 과정을 앞뒤 잘라서 이야기를 하면 왜곡”이라며 “실시간 동기화되는 AI 기반의 일자리 매칭을 말하는 거다. 옛날에 해왔던 앱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부득이 국민의힘을 선택”
호남 방문 이튿날에도 윤 후보의 발언 논란은 계속됐다. 윤 후보는 이날 전남 순천에서 열린 전남선대위 출범식에서 과거 호남 민심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국민의힘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윤 후보는 “국민의힘이 그동안 제대로 잘 못 했기 때문에 호남분들이 우리 당에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지지를 하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호남 민심에 공감을 표했다.
이어 ‘부득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나도 이 정권은 교체해야겠고 민주당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부득이 이 국민의힘을 선택했지만, 국민의힘이 진정한 국민의 지지를 받는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고 늘 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득이는 사전에서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놓고 한 누리꾼은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만든 ‘청년의꿈’ 플랫폼에 윤 후보의 발언을 공유한 뒤 “‘1일 1망언’ 대단하다. 이런 인간한테 대선후보를 맡기고 가야하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홍 의원은 “아직도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당 탓을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 후보는 또다시 해명을 내놓았다. 그는 이날 여수광양항만공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민주당의 대척점에 있는 당으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는 기본적 입장을 갖고 있다. 내가 국민의힘에 입당해서 더 혁신을 하고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포용받을 수 있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에서 수입해온 이념에 사로잡혀 민주화 운동…”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윤 후보는 전남선대위 출범식에서 “80년대 민주화 운동 하신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 민주화운동이 그야말로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한 민주화운동이 아니고, 어디 외국에서 수입해 온 이념에 사로잡혀서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과 같은 길을 걸은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발언이 비판을 받자 윤 후보는 ‘왜곡’이라고 반발했다. 윤 후보는 먼저 “민주화 운동이 수입됐다는 것이 아니다. 잘 보라. 민주화 운동이 한번 쉬고 바깥에서, 외국을 통해서 수입된 이념에 따른 운동과 같은 길을 걷게 됐다는 뜻”이라며 “민주화 운동이 수입됐다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또 “당시에는 이념 투쟁이라는 것도 우리 민주화 운동과 결국은 목표를 같이하는 것이라 사회에서 받아들여졌다”며 “그러나 민주화·문민화된 이후에도 이념 투쟁, 이념에 사로잡힌 운동권에 의해 사회 발전에 발목 잡힌 경우가 많았다”고 부연했다.
‘외국에서 수입된 이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모르는가. 여러분도 다 알거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이념투쟁에 사용된 이념들이 예를 들면 남미 종속이론도 있을 것이고, 북한에서 수입된 주사파·주체사상이론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번번이 국민 화만 돋우는 ‘망언 퍼레이드’”
윤 후보의 논란이 반복되면서 정치권은 일제히 비판에 나섰다.
오승재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윤 후보는 하루라도 망언을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인가”라며 “극빈층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나서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번번이 국민의 화만 돋우는 윤석열 후보의 ‘망언 퍼레이드’는 스스로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연거푸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공세의 고삐를 당겼다. 발언 하나하나에 논평을 내고 조목조목 비판을 쏟아냈다. 최지은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기는커녕, 나누고 찢는 것도 모자라, 역사의 상처를 구태의 상징 색깔론으로 다시 헤집는 사람은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고 꼬집었다.
남영희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다시 돌아온 1일 1망언은 준비 부족이 아니라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윤 후보의 ‘1일 1망언’만큼 위험한 것은 반성없는 태도다. 국민은 줄곧 윤 후보의 차별과 편견, 혐오의 태도를 경고해왔지만, 윤 후보는 변명만 했지 한번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날을 세웠다.
전남·전북=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