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파더스’ 판결에 그들이 눈물지은 이유는

‘배드파더스’ 판결에 그들이 눈물지은 이유는

기사승인 2021-12-24 16:01:53
그래픽=이희정 디자이너 
양육비 미지급자의 신상을 공개한 배드파더스 대표가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양육비 문제 해결 활동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원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23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구본창 배드파더스 대표에게 벌금 1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가벼운 범죄에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보류했다가 면소된 것으로 간주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신상정보에는 신원을 특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얼굴 사진을 비롯해 세부적인 직장명까지 포함돼 있다”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런 정보가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구 대표는 항소심 판결 후 “유죄가 인정되면 앞으로 양육비 해결 운동 등이 여러 제약을 받을 수 있다”며 “상고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배드파더스는 지난 2018년 7월 개설됐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얼굴과 이름, 직업 등을 공개했다. 당시 법으로는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수 없었다. 신상이 공개된 부모들은 사진을 내려달라며 양육비를 보내기 시작했다. 수백여명이 배드파더스를 통해 양육비 분쟁을 해결했다.

신상이 공개된 일부 양육비 미지급자들은 배드파더스가 자신의 명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구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배심원들은 배드파더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만장일치 평결을 내놨다. 

양육비 문제 당사자들은 법원의 달라진 판결에 당혹스러움을 호소했다. 재판을 지켜보던 이들은 선고 결과에 “이런 게 어딨느냐. 아이들은 죽으라는 소리냐”,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한 거였는데 말이 되느냐” 등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는 눈물도 보였다. 사단법인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는 “(항소심) 재판부는 한부모가정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한 번 더 처절히 사회에 외칠 수밖에 없다”며 “양육비 미지급이 중대한 아동학대라는 인식이 부재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향후 양육비 문제 해결 활동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항소심 재판부에서 사진과 세부 직장명을 공익을 위해 불필요한 정보라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지난 7월부터 ‘양육비 이행확보와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이 개정됐다.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신상을 정부 차원에서 공개하고, 출국금지·운전면허 정지 등의 조치도 가능해졌다. 이에 구 대표는 배드파더스 사이트를 지난 10월 폐쇄했다.
 
그러나 개정된 양육비이행법이 실질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의 신상공개에서는 사진과 상세주소 등이 빠졌다. 직업은 ‘회사원’ 등으로 뭉뚱그려 설명됐다. 실제 대상이 누구인지 특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19일 여성가족부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 2명의 신상정보가 공개됐다. 미지급자의 주소지로 공개된 인천 서구 검단로 326번길에는 수십여개의 회사가 위치해있다. 명확한 상호와 직업, 상세 주소가 공개되는 국세청 고액상습체납자 명단과 비교하면 특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영 양해연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의 문제다. 항소심 재판부에서 아동인권 문제를 후퇴시키는 결정을 하면서 원점부터 시작하게 됐다”며 “현행 양육비이행법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 많다. 이번 법원의 판단으로 인해 개선 활동이 위축될까 두렵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얼굴과 직장명을 공개하지 않고 소송과 외침만으로 양육비를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배드파더스의 공개 범위는 아동 생존권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최소한으로 침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번 판결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을 위한 공익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고 꼬집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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