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6일
가족 단체 채팅방에서 1이 사라지지 않았다. 군대 간 아들이 전하는 안부 메시지가 가득 쌓였는데도 아내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늦어도 오후 2시까지 집에 오겠다던 아내였다. 오후 10시가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112 신고 후 1시간 만에 아내를 찾았다.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였다.
△7월7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아내와 함께 일했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동료들이 목소리를 냈다. 과중한 업무와 갑질에 대한 증언이 이어졌다. 아내는 수용인원 196명의 기숙사를 홀로 청소했다. 새로 부임한 안전관리팀장은 회의 시간 ‘드레스코드’와 시험을 신설했다. 시험에서는 ‘관악학생생활관’을 영어 또는 한자로 쓰게 했다. 각 건물의 준공 연도도 문제로 출제됐다. 생전 아내는 “준공연도와 청소 업무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점수가 높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무안을 준다”고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아내를 떠올리며 기자회견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아내의 동료들이 이런 기막힌 환경에서 일하지 않기를, 출근하는 가족의 뒷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7월9일·10일
서울대 관계자들이 ‘갑질’ 의혹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학교에서 청소노동자를 구성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학생처장은 개인 SNS를 통해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 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 역겹다”며 “언론에 마구잡이로 유통되고 소비되는 ‘악독한 특정 관리자’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기숙사 기획시설부관장은 기숙사 홈페이지에 “해당 관리자를 마녀사냥식으로 갑질 프레임을 씌우는 불미스러운 일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는 글을 게재했다.
△7월15일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TF에서 서울대를 찾았다. 이탄희·장철민·이해식 의원 등은 아내가 일했던 기숙사와 휴게실, 분리수거장 등을 방문했다. 100ℓ 쓰레기봉투를 직접 들어보기도 했다. 대화의 시간도 있었다. 의원들과 대화할 기회도 마련됐다. 사진만 찍고 가는 게 아닐까 걱정됐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학교와 개선이 필요한 이유를 토로했다. 의원들은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줬다. 한 의원은 아무도 모르게 찾아와 가족을 위로하기도 했다.
△8월2일
서울대가 아내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사과했다. 아내가 숨진 지 38일 만이다. 서울대는 “고인과 유족, 그리고 피해 근로자 모든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용노동부의 행정 지도 내용에 따라 충실히 이행 방안을 준비해 성실히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도 전날 전화를 걸어 “굉장히 죄송하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씁쓸했다. 지난 7월30일 고용노동부에서 갑질 의혹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했다. 필기시험 실시와 시험성적 근무평정 반영 의사 표시, 복장에 대한 점검·품평 등이다. 고용노동부의 갑질 인정 판단이 없었다면 사과가 있었을까.
△8월5일
오 총장과 유가족·청소노동자의 간담회가 열렸다. 직장 내 괴롭힘 재발 방지와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자리다. 오 총장은 간담회에서 “근로자의 인권을 고려하겠다”며 “전체적인 조직 문화를 어떻게 개선할지 장기적으로 보겠다”고 말했다. 아내를 위해 증언한 노동자들이 불이익 없이 정년까지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오 총장도 긍정했다. 다만 증언한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내와 친했던 청소노동자가 계약 연장 없이 해고된 것은 우연일까.
△9월10일
서울대 인권센터가 아내의 사망과 관련해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인권침해를 일부 인정했다. 드레스코드와 시험을 치르게 한 행위 등이 인권침해에 해당된다고 봤다. 그러나 업무환경과 임금 삭감 위협, 청소 검열 등에 대해서는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갑질 의혹의 당사자인 중간관리자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개시를 명령했다.
△11월10일
중간관리자에 대한 징계는 경고에 그쳤다. 경고, 견책, 감봉, 정직, 해고 등 총 5단계 중 가장 가벼운 처분이다. 중간관리자에게 커다란 해가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처분이 내려진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12월23일
서울대 인권센터는 지난 7월 서울대 관계자들이 갑질 의혹에 반박하는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인권침해’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들에게 인권감수성 증진을 위한 교육이 권고됐다. 당시 학내 보직을 맡았던 점, 고인에 대한 애도가 필요한 기간이었던 점, 고인의 유족과 동료 입장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필요했다는 점 등에서 인권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이 게시글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인권교육 권고가 나온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됐다.
△12월27일
근로복지공단 서울 관악지사에서 아내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육체 강도가 높은 노동이 있었다는 점과 중간관리자의 갑질 등이 스트레스 요인이 됐다는 점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순탄하지 않았다. 서울대의 강한 반발에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이제라도 인정돼 다행스럽다. 그렇지만 아내의 빈 자리는 채워지지 않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