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제 계절을 기다릴 거예요.” 2010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다른 멤버들이 주목받을 때도 묵묵히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 12년 후, 그는 과거 곡의 역주행과 드라마의 성공으로 자신의 계절을 맞았다. ‘우리집’과 MBC ‘옷소매 붉은 끝동’ 이산 역으로 흥행 연타를 이뤄낸 그룹 2PM 이준호의 이야기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그는 “해왔던 대로 꾸준히 살다 보니 많은 사랑을 받았다”면서 “이런 긍정적인 힘이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며 행복해했다.
완벽한 이산이 되는 게 목표였다. 왼손잡이인 이준호는 젓가락질부터 연습했다. 평소에도 정자세로 생활하고 위엄 있게 걸으려 노력했다. 사소한 습관부터 바로잡으며 인물의 감정선에 녹아들었다. 극이 진행될수록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작가, 감독, 배우 모두 완벽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좋은 결과로 마무리됐다. 드라마가 거둔 성공에 이준호는 “좋은 분들과 좋은 환경에서 좋은 분위기로 촬영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면서 “모든 게 잘 맞아떨어져 기쁘다”며 만족해했다.“처음에는 정형화된 왕의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상의 왕이 아닌 정조를 연기하는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었죠. 정조는 모범적으로 보여도 내면에 큰 아픔을 가지고 생명의 위협도 받아요. 무엇이든 허투루 할 수 없죠. 그래서 저 역시 모든 행동을 절제해가며 연기했어요. 꾸준히 멋진 연기를 하려 하니 좋은 반응도 나온 것 같아요. ‘김과장’에서 서율을 맡았을 때도 이런 칭찬을 받았거든요. 앞으로도 캐릭터와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함께 호흡한 배우들은 이준호의 든든한 동반자다. 로맨스 상대였던 성덕임 역의 이세영과 영조를 연기한 이덕화 등은 버팀목이 됐다. 이세영의 긍정적인 힘에 동화되고 이덕화의 에너지에 압도된 경험은 그에게 소중히 남았다. 이들과 함께한 3, 5회 엔딩은 ‘옷소매 붉은 끝동’ 초반 입소문의 주역이었다. 덕임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다룬 16, 17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작품의 순간들을 회상하던 이준호는 뭉클함을 감추지 못했다.
“3회에서 연못에 비친 모습으로 덕임이 이산을 알아보는 장면이 정말 좋았어요. 편집본을 보자마자 짜릿했을 정도거든요. 5회 엔딩은 배우들의 감정만으로 채워졌어요. 예정에 없던 눈물이 흘렀어요. 영조와의 독대 후 덕임에게 왕세손으로서 다짐을 이야기할 때에는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모든 감정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어요. 16, 17회는 사랑이 이뤄진 젊은 이산과 왕으로서 고뇌하는 이산, 말년의 정조 등 큰 간극이 있었어요. 호흡이나 대사 속도를 계산하지 않고 오롯이 이산의 감정에만 집중했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편안히 연기했던 순간들이에요.”
시청자 사이에서는 이산이 덕임의 마음을 알았는지에 대한 담론도 일었다. 극 중 이산은 덕임에게 연모한다는 말을 끝내 듣지 못한다. 그에게 늘 사랑을 확인받고자 한다. 이준호는 “이산은 덕임의 마음을 알았을 것”이라며 자신이 해석한 이산의 마음을 설명했다. 여전히 극에 몰입한 모습이었다. 여운이 깊어 보인다고 하자 “정말 그렇다”며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이산은 덕임의 마음을 알았을 거예요. 그래도 사랑하니까 계속 마음을 확인하고 싶던 것 아닐까요? 많은 순간 덕임은 산에게 진심을 드러냈어요. 산은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덕임을 후궁으로 들였지만, 거꾸로 그를 불행하게 한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덕임이가 행복한지, 자신을 사랑하는지 계속 물어본 것 같고요. 연기하면서도 그런 마음을 느꼈거든요. 그러다 별당에서 다시 만나고 산은 덕임의 연심을 확인받게 되죠. 저는, 덕임이가 산이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어요. 드라마 표어가 ‘왕은 궁녀를 사랑했으나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거든요. 그 말에 완벽히 부합하는 엔딩이라 생각해요. 아, 정말 여운이 가시질 않아요. 당분간은 계속 드라마를 곱씹으며 시간을 보낼 것 같아요.”
‘옷소매 붉은 끝동’으로 이준호는 배우로서 입지를 더욱 다졌다. 그럼에도 늘 잊지 않는 건 자신의 뿌리, 2PM이다. 과거와 달라진 점을 묻자 “예전과 지금이나 마음가짐은 같다. 조금 더 성숙해졌을 뿐”이라고 답하던 그는 2PM 이야기에 화색이 돌았다. 2PM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엔 “이제는 뭐라 단정하기도 어렵다. 정말 가족이다”며 미소 지었다. “어느 자리를 가도 ‘2PM의 이준호’라고 인사하는 건 제가 누군지 말씀드리고 싶어서예요. 큰 의미는 없어요.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소개할 뿐이죠.” 2PM에 매진할 때도, 개인 활동을 해나갈 때도, 배우로 활약하면서도 이준호는 변함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채찍질을 이어간다.
“저는 언제나 같아요. 부족한 부분과 마음에 든 부분을 생각하고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려 하거든요. 저는 연예인으로서 타고난 게 없어요. 어린 시절 오디션을 보던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뭐든 제가 노력할 뿐이지 천성에 맞지는 않아요. 단지 즐거울 뿐이죠. 돌아보면 지금 저는 과거보다 나아진 것 같아요. 열심히 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어린 날의 제게 꼭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때처럼, 큰 꿈을 꿔가며 활동하고 싶어요. 지금 모습처럼 오랫동안 활동하는 것도 제 꿈이거든요. 꿈들을 이뤄가며, 그렇게 살 거예요. 앞으로도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