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광주 붕괴 참사 막는다....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제 2의 광주 붕괴 참사 막는다....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위험한 근로현장 안전시대 열려...책임자 처벌 법률 근거 마련
기업, 안전관리 강화에 속도...조직 신설‧하청업체 직접 관리
 ‘중소‧영세기업 지원’ ‘적용범위 확대’ 등 풀어야할 과제

기사승인 2022-01-27 06:00:06
평택 물류창고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 세 명의 합동연결식.   경기도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근로현장의 안전시대가 열렸다. 산업재해시 처벌 근거가 마련되면서 근로현장의 안전관리에 일대 혁신이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근로현장의 반복되는 붕괴 및 화재 등 안전사고는 노동자는 물론 일반 시민과 소방관 등 시민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하지만 사고 책임자 처벌은 법률 근거가 부족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1월8일 국회를 통과했다. 같은달 26일 공포됐으며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2년 1월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은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중대 재해(산업재해+시민재해)가 발생할 경우 처벌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나 시민이 사망하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처분을 받게 된다.

지난 11일 HDC현대산업개발이 시공 중이던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23∼38층 일부가 붕괴했다.   연합뉴스

솜방망이 처벌 이제 그만


최근 6년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총 1만명이 넘어간다. 반면 사고 책임자 가운데 실형을 받은 사람은 26명에 불과하다. 27일 법원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은 총 1만1766명, 재해자수는 총 59만559명인데 반해 같은 기간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사람은 29명에 불과했다. 특히 처벌은 하청업체에 집중됐다. 처벌 근거가 부족해 사업주나 원청은 처벌을 피해갔다. 

솜방망이 처벌은 또 다른 산재사고 발생을 예방하는데 역부족인 모습을 보였다. 2020년 4월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이천 물류센터 화재 이후에도 같은해 용인, 다음해인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 올해 소방관 3명이 떠나간 평택 등 물류센터 화재만 놓고 봐도 동일한 사고가 반복됐다. 건설 공사 현장의 붕괴사고 역시 반복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지나가던 버스를 덮친 광주 학동 철거공사 붕괴사고에 이어 올해는 광주 화정동 신축공사 현장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더욱이 붕괴사고의 경우 시행사가 HDC현대산업개발로 동일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처럼 ‘솜방망이 처벌이 산업재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노동계와 정부, 범여권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산업재해 시 관련자를 엄정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법 제정을 불러왔다. 이들은 경영책임자나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총괄적인 관리의무를 부여하고 의무위반으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엄중히 처벌을 주장했다. 법이 시행되면서 산재발생 시 하청업체를 넘어 사업주와 원청도 처벌 대상에 포함됐다. 

건설현장의 안전점검 모습.   쿠키뉴스DB

처벌한다니 달라진 안전 노력


근로현장에서 인명 사고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처벌은 각 기업들의 안전관리 강화 노력을 불러오고 있다. 근로자 사망사고가 수시로 발생하는 건설업계를 보면 안전관리 조직을 신설‧확대하고, 하청업체 안전관리를 원청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각종 안전관리 신기술 도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예컨대 시공능력 1위 삼성물산의 경우 종전 2개 팀이던 안전환경실'을 7개 팀의 안전보건실로 확대·개편 했다. 여기에 최고안전책임자(CSO)를 부사장급으로 신규 선임하고, 안전 전담 연구 조직인 ‘건설안전연구소’를 마련했다. CEO가 주도하는 ‘안전경영회의’를 정기화하는 것은 물론 하청업체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다양한 안전 법규와 기준에 부합되는 안전관리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삼성형 안전시스템 인정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지급하는 안전 인센티브도 대폭 확대했다.

비단 이러한 변화는 민간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공공기관의 장도 경영책임자에 해당되는 만큼 공공부문의 안전관리 강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말에는 ‘중대재해예방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중대시민재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자치구 등에 배포했다. 또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서울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논의하는 ‘서울안전자문회의’도 출범시켰다. 장관들은 산하 기관을 대상으로 안전관리를 직접 점검하고 나섰으며, 주택공급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은 관련 조직과 예산을 대폭 확충했다.

주보원 중소기업중앙회 노동인력위원회 공동위원장(오른쪽)이 24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른 중소기업계 호소문을 읽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미완의 시작, 과제는 안착


중대재해처벌법이 근로현장의 안전 강화에 변화를 불러오고 있지만 아직 미완의 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법안의 내용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다.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법을 준수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아우성도 나온다.

법안의 내용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은 주로 경영계에서 나온다. 경영계는 중대재해 발생 시 처벌을 면책받기 위한 경영책임자의 의무내용이 포괄적이고 불분명해 기업이 명확한 기준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처벌이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에 경영계는 경영책임자가 이행해야할 의무를 구체화해 주거나 면책조항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안착을 위해 중소‧영세기업 지원도 앞으로 풀어 나가야할 과제다. 중소기업들은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인력과 예산의 부족함을 호소하며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우리도 대기업처럼 컨설팅도 받고 전문인력도 채용하고 싶지만 코로나 터널을 지나면서 늘어난 대출로 지금의 일자리조차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범위를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문제도 남아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산재 사망자의 약 63%가 5인 미만과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한 예방과 보호의 필요성은 5인 미만과 50인 미만 사업장에서도 매우 절실하다”며 “법 적용에 예외를 두거나 미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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