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경비원 분신한 아파트, 설 앞두고 집단해고 논란

8년 전 경비원 분신한 아파트, 설 앞두고 집단해고 논란

기사승인 2022-01-28 06:27:01
2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밥 먹다가 차 빼달라고 하면 숟가락 놓고 나갔습니다. 돌아와 한 입 먹을 참이면 또 부릅니다. 차 두 번 빼고 오면 밥알이 아니라 모래알입니다. 라면을 끓여도 일에 치여 결국 입에 들어가는 건 퉁퉁 불은 면입니다.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죄라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가 해고입니까”

설을 닷새 앞두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이 집단해고 당했다. 용역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용 승계 된 나머지 경비원들도 2개월이라는 초단기 근로계약서를 써야 할 상황에 놓였다. 

27일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민주일반노조)은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관리사무소 앞에서 경비노동자 집단해고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해고조치를 철회하고 경비노동자 전원에 대해 포괄적 고용승계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민주일반노조에 따르면 아파트가 경비 용역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경비노동자 74명 중 최소 5명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사유는 불분명하다. 해고를 간신히 피한 이들도 전날 2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새로운 용역업체가 전날 경비노동자들에게 보낸 2개월씩 근로계약을 체결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자.   사진=정진용 기자

경비노동자들은 해고 통보가 근로조건 개선 요구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다고 본다. 지난 10월부터 시행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은 경비원 업무를 청소, 재활용 분리배출 감시·정리 등으로 제한했다. 주차 대행이나 택배 세대 배달 을 시키면 입주자대표회의에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는 경비원이 아닌 관리원으로 전환되며 개정안 적용을 비켜갔다. 공동주택관리법 적용을 받는 경비원과 달리 관리원은 업무 범위에 대한 제약이 없다. 근로기준법만 적용된다.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들은 각자 하루 많게는 50여건의 대리 주차를 하는 등 기존 업무를 그대로 수행했다. 근무시간과 적정 휴게공간이라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해고 통보로 답했다는 주장이다. 또 해고 대상자 중에 민주일반노조 신현대아파트분회 이충근 사무장이 포함돼 노조 간부에 대한 표적해고이자 노조 와해 시도라는 비판도 나온다. 

해고당사자인 이 사무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난 6년 동안 근무하며 시말서 한 번 써본 적 없다. 일 못한다고 민원 한 번 들어간 적 없다”면서 “관리원으로 전환되며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이 2시간씩으로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휴게시간에도 계속 일을 해야했기에 그에 대한 수당과 식사 제공, 정년 보장을 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 요구가 잘못된 것이냐”고 토로했다.
지난해 입주민의 폭행·폭언에 극단적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고 최희석씨가 근무하던 서울 우이동의 아파트 경비실. 쿠키뉴스DB

앞서 이 아파트에서는 지난 2014년 11월 한 경비노동자가 몸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한 입주민이 “경비 이거 먹어”라며 아파트 5층 베란다에서 화단으로 음식을 던지는 등 수시로 갑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경비노동자는 아파트 앞에서 분신을 시도했고 끝내 숨졌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른 조합원은 “노조 활동하면서 파업을 한 적도 없고 주민에게 어떠한 불편을 주지 않았다. 다수 주민들은 노조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면서 “노조 간부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노조 탄압이다. 도대체 몇 명이나 더 분신해야 이 만행을 중단할 것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기자회견 뒤 참가자들은 관리사무소에 방문해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했다. 신규 용역업체 측은 “2개월씩 근로계약을 체결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며 “근무 중 특이사항이 없으면 오는 2023년 1월31일까지 근로계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전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가 고용승계에 대한 정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면, 새로운 용역업체가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승계를 거절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 

이 아파트에서 7년을 일한 이형철(60) 경비노동자는 “2개월 계약은 말도 안 된다”면서 “2개월 뒤에 또다시 사람들을 정리하겠다는 뜻밖에 더 되나”라고 반문했다. 설을 앞두고 이같은 통보를 받은 그는 “정나미가 떨어진다”면서 고개를 떨궜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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