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한 장면도 눈 뗄 수 없다. 몇 년이 지나 다시 듣는 이야기는 새롭다. 진지한 이야기에 자꾸 웃음이 나고, 웃으며 하는 이야기에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난다. 5년 전 불 붙은 촛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 그리고 앞으로 촛불의 의미는 어떻게 남아야 할까.
‘나의 촛불’(감독 김의성, 주진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그 과정에 일어난 광화문 촛불 시위를 다시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시간순으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와 세월호 참사,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 등 언제 어디서부터 문제가 불거졌는지 촘촘하게 재구성했다. 약 3만 명에서 시작해 누적 참석인원 약 1600만 명까지, 하나의 촛불이 셀 수 없이 많은 촛불로 번진 순간으로 들어간다.
역사에 남은 의미 있는 사건을 재연하는 단순한 기록 영화가 아니다. ‘나의 촛불’은 같은 사건을 접한 그 순간, 국회와 시민들이 어떻게 다르게 반응했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탄핵이라는 결과보다 탄핵 이전의 과정에 주목한다. 국회는 탄핵 정국을 두려워했고, 시민들은 광장에 나가 탄핵을 외쳤다. 시민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시간이 지나도 시민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광장을 찾아 시민들의 반응을 확인한 후에야 국회도 탄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잘 끝난 일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건 기록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촛불’은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기록물의 역할을 자처한다. 동시에 촛불 시위에 보내는 찬사를 숨기지 않는다. 비폭력적인 시위로 대통령을 교체해 세계에서 주목한 민주주의의 성공 사례, 그 모든 과정을 주도하고 끝까지 이어간 시민의 위대함을 영화는 거듭 강조한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5%대로 추락했고,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80%를 넘었다. 정파성을 떠나 대부분 국민이 탄핵을 외쳤다. 시민들이 직접 뽑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 허탈함에 시민의 승리 서사만큼 좋은 치료제는 없다. 다만 달콤하고 힘이 나는 약이 정말 몸에도 좋을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2년간 개봉을 미룬 영화다. 미뤄진 시간 만큼 국내 정치 상황이 달라져, 대선을 한 달여 남겨둔 지금 볼 때 흥미로운 장면이 많다.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부터 박근혜, 최서원 게이트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그리고 유시민 작가, 손석희 JTBC 총괄사장, 추미애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사건 가까이에 있었던 이들의 인터뷰가 여러 맥락으로 읽힌다. 그 중에서도 직접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던 시민들 인터뷰는 유난히 빛난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함께 진행한 배우 김의성과 주진우 기자가 의기투합해 만든 작품이다. 감독을 찾지 못해 직접 공동 연출을 맡았고, 제작까지 했다. 시민들이 직접 촛불 시위 영상을 제공했고, 사연을 토대로 인터뷰 섭외가 진행됐다. 복역 중인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을 비롯해 대부분 친박 정치인들이 출연하지 않았다.
다음달 10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