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르노빌’ 안 본 사람과 드라마 얘기 안 합니다
몰아볼까 : 재난 드라마, 아니 드라마의 끝판왕이 여기에. 지금까지 본 공포물, 재난물은 모두 잊어 주십시오.
세 줄 감상
① 무기도 없고, 액션도 없고, 피 한 방울 안 흘리는데 이렇게 무섭다고? 갑자기 눈물은 왜 나는데?
② 저는 드라마를 본 게 아니라 세계사 공부를 했을 뿐입니다
③ 일단 제가 다 잘못했고요, 살아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준범 기자의 ‘체르노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 작품이 있었나. 재난을 이렇게 다룬 영화가 있었나. 이걸 대체 어떻게 찍었지. HBO ‘체르노빌’을 보면서 다른 어떤 작품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물음이 떠올랐다. 갈수록 물음들은 하나씩 가라앉았다. 고요해졌다. 지난 1986년 소련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사고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분명 어디서 들어봤지만 잘 몰랐던 그곳으로 드라마는 시청자를 데려다 놓는다.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고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극 중 인물들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인 무력감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무력감은 나에게도 전이된다. 지어낸 이야기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이 주는 절망감도 크다. 소련 이름을 가진 소련 사람들이 소련에서 모두 영어를 쓰는 진입장벽만 넘어서면 커다란 무언가를 남기는 매우 완성도 높은 드라마다. 탈원전 이슈도 다른 시각으로 보인다. 인생 드라마 리스트의 업데이트가 잘 안 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체르노빌’부터 보고 와서 얘기하자.
△ 사는 게 버거운 당신을 위해, ‘디어 마이 프렌즈’
몰아볼까 : 삶을 향한 아름다운 헌사. 대본, 연출, 연기의 조화가 ‘후덜덜’하다.
세 줄 감상
① 열 번 봐도 열 번 우는 마성의 드라마
② 연기 경력 도합 300년. 선생님들, 연기 좀 살살 해주세요.
③ 노희경 작가 가라사대, 우리 삶은 언제나 남는 장사이며 넘치는 축복. 그러니, 올해도 힘내서 가보자고!
이은호 기자의 ‘디어 마이 프렌즈’
‘디어 마이 프렌즈’ 속 노인들은 모두 어딘가 밉살맞은 데가 있다. 극 중 대사를 빌려 표현하자면, 충남(윤여정)은 “자기도 늙은 주제에 늙은이를 무시하며 젊은 애만 밝히”고, 희자(김혜자)는 “막무가내 4차원”이며, 난희(고두심)는 딸에게 “집착”하는 엄마다. 석균(신구)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짠돌이에 ‘남자는 하늘’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꼰대다. 그런데도 이 노인들을 쉽게 미워할 수 없는 건, 과오를 정당화하지 않으면서도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노희경 작가의 솜씨 덕분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헌사가 작품 곳곳에서 읽힌다. 주인공 완(고현정)이 말했듯, “어떤 사람의 인생도 한 두 마디로 정리하면 모두 우스꽝스러운 코미디”가 되지만, “내 인생을 한 줄로 정의해버린다면 나는 외로울 것”이다. 삶이 부대끼고 비루하게 느껴질 때 ‘디어 마이 프렌즈’에 마음을 기대보자.
△ 관계 전복 로맨스의 짜릿한 맛, ‘질투의 화신’
몰아볼까 : 웃고 울며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명작. 양다리 로맨스의 신기원. 스핀오프를 바라게 되는 매력 가득한 캐릭터들의 향연.
세 줄 감상
① 사랑의 약자가 양다리를 걸치는 마성의 여자로!
② 마초남 이화신이 머리채를 잡히고 등짝을 맞을 때마다 샘솟는 즐거움
③ 그래서 sbc 방송국은 채널 몇 번인가요?
김예슬 기자의 ‘질투의 화신’
관계가 역전될 때 느끼는 짜릿함은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정서다. 3년 동안 짝사랑해왔던 사람이 도리어 나를 짝사랑한다면? 그런데 또 다른 완벽한 이성이 내가 좋다며 달려든다면? 그리하여 두 사람이 내게 ‘양다리라도 걸쳐달라’며 사랑을 갈구한다면? ‘질투의 화신’은 짝사랑 전문인 기상캐스터 표나리(공효진)의 사랑 쟁취기이자, 남성성에 자긍심을 가진 이화신(조정석)의 회복기다. 이 작품은 여러 갈래의 질투를 다룬다. sbc 방송국을 배경으로 보도국·아나운서국의 알력 다툼과 고등학생 이빨강(문가영)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두 엄마의 신경전, 표나리를 사이에 둔 죽마고우 이화신과 고정원(고경표)의 경쟁까지. 다양한 관계 속 질투가 발랄한 분위기로 담겼다. 모든 캐릭터는 저마다의 개성을 갖고 생동하듯 활약한다. 여기에 다채로운 상황이 더해져 극에 절로 빠져들게 한다. 배우, 작가, 감독 등 드라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다. 꼭 봐야 하는 이유를 다섯 글자로 요약하자면… ‘그냥 봐야 해’라고 답하겠다. 제발, ‘질투의 화신’ 안 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이준범 이은호 김예슬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