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학’ 이재규 감독 “수위 조절? 좀비물다워야 하잖아요” [쿠키인터뷰]

‘지우학’ 이재규 감독 “수위 조절? 좀비물다워야 하잖아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2-02-15 06:57:01
이재규 감독. 넷플릭스

학교에 좀비가 나타났다. 좀비는 순식간에 피로 학교를 물들였다. 몇몇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았다. 하지만 이미 살아남는 것이 너무 힘든 세상이 됐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빠르고 역동적인 기존 한국 좀비물의 장점에 학교라는 낯선 공간을 더했다. 학생들의 순수한 매력에 신인급 배우들의 열연이 더해져 기억에 남는 장면을 여럿 만들었다. 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이틀 후인 지난달 29일 넷플릭스 TV쇼 부문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이후 15일 동안 1위를 지키며 지난해 공개된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이후 가장 흥행한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가 됐다. 반면 학생들이 출연하는 장면들을 지나치게 잔인하게 표현하거나 불필요한 폭력이 등장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지난 7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이재규 감독은 19년 전 자신이 연출한 MBC 드라마 ‘다모’를 언급하며 “‘다모’ 이후 반응이 제일 뜨거웠다. 응원 연락을 받는 게 그 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11년 전 완결된 동명의 웹툰을 읽고 천성일 작가와 호흡을 맞춰 2년 동안 대본을 다듬었다. 좀비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매력을 느끼며 작업한 결과가 ‘지금 우리 학교는’이다. 이재규 감독과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원작 웹툰을 읽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때 독감에 심하게 걸렸거든요. 몸 져 누운 상태로 3일 동안 웹툰을 두 번 정독했어요. 깊은 인상 받았습니다. 그전엔 좀비물을 즐겨보지 못했어요. 좀비 상황에 노출된 사람들이 감정을 갖고 극단적 상황에 놓이는 점이 재밌었어요. 학생들 이야기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일반 어른이 아니라 성숙하지 못한 학생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성인들과 다른 선택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누구보다 극단적이고 성급하고 따뜻한 게 학생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웹툰을 영상화하면 신선한 매력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 드라마 속에 영화 ‘부산행’이 언급되는 점이나 좀비들의 움직임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른 작품을 하면서 틈틈이 천성일 작가와 2년 동안 집필했어요. 초반엔 ‘좀비’라는 단어를 완전히 배제하려고 했어요. 제가 어느 날 회의 중에 좀비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죠. 좀비 영상물이 많은 상황에서 현재 고등학교 학생들이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게 현실감 주는 데 불편하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좀비물이 많은 사랑을 받았잖아요. 누구나 좀비를 인지하는 상황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그런 세계관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천 작가님이 ‘감독님이 (좀비를) 쓰지 말라고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전 제가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 못했는데 말이죠.
좀비는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죽은 짐승에 가깝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일반적인 배고픔에 더해 공포심을 느껴요. 그래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하나의 기제가 되는 설정입니다. 배우 출신 안무가인 한성수와 댄서 출신 안무가인 국중이 두 분께 같이 부탁을 드렸어요. 한 분만 하셨을 때 장점도 있겠지만, 몸을 잘 사용하는 댄스 출신 안무가와 감성을 가져가는 배우 출신 안무가 두 분이 상의해서 만들면 더 새롭고 깊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좋은 좀비 표현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스틸컷

- 좀비물에 학교가 등장하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같은 장소가 많이 반복되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여주려고 하셨나요?

“학교는 규격화된 사각 공간이 많아요. 그 공간을 계속 다르게 느끼도록 해야 했습니다. 미장센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공간의 색감부터 가구 배치를 아이들 정서 상태와 맞추면서 구성하려고 했어요. 아이들의 의상 색깔과 핏물과 높이 등 고려할 점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진화할수록 아이들이 있는 공간이 달라져요. 공간에 맞춰서 달라지는 아이들의 변화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됐으면 싶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 아이들 곁에 같이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원 테이크 촬영 방식도 차용하면서 관객들이 아이들 옆에 동참하고 있다는 감각을 주려고 했죠.”

- 학생들이 좀비가 되는 설정인데 잔인한 장면이 여럿 등장합니다. 수위 조절은 어떻게 하려고 하셨나요?

“원작도 청소년 관람 불가였어요. 영상이 수용하기 어려운 장면은 제외하려고 했어요. 저희도 애초에 청소년 관람 불가로 제작하려 했습니다. 좀비물은 좀비물다워야 하는 지점도 있으니까요. 좀비물인데 너무 순해선 좀비물을 원하는 관객을 모실 수 없으니 최소한의 장치는 가져가야 했어요. 또 좀비 마니아만 보는 드라마가 아니라 더 많은 세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에 숨어있는 행간을 느끼고 삶을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만든 극이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수위를 조절하려 했습니다. 극을 만들며 전달하려는 장면은 수용하려 했고, 지나치게 장치적으로 사용돼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은 빼려고 했어요. 잔인하게 보이는 장면이 있으면, 저희 판단엔 좀비답기 위해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 어른들이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고 학생들이 영상을 남기는 장면, 노란색 끈을 따라 길을 찾는 장면 등 전반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해당 내용을 넣는 데 어떤 고민이 있었나요?

“특정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구성하진 않았어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지만, 학교는 사회의 거울입니다. 학교 폭력은 학교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엔 더 폭력적인 사건이 얼마든지 있어요. 많은 사람이 가해자 입장, 피해자 입장에 놓여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하려고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도 있지만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등 일어나선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사건사고들이 많잖아요. 그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려 했지 사건 하나를 전달하려 한 건 아닙니다. 과연 우리는 어른스럽게 책임을 갖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구성했어요.”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 현장 스틸컷

- ‘지금 우리 학교는’은 K좀비물의 연장선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K좀비물의 매력은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나요?

“좀비물은 제가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었어요. ‘지금 우리 학교는’을 하면서 책임감 때문에 좀비물을 보기 시작했어요. 재밌더라고요. 좀비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다고 깨닫게 됐습니다. 저와 다르게 좀비물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더라고요. 미국 AMC 드라마 ‘워킹데드’도 그렇고, 어마어마하게 성공한 좀비물 많아요. K좀비는 뜨겁다고 생각해요. 한국인도 정서적으로 뜨겁고 한(恨)을 갖고 있듯이, 좀비가 어떤 응어리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서양 좀비물은 건조하거든요. K좀비물은 뜨겁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 많아서 관객들에게 매력을 주지 않나 싶습니다.”

- 전 세계적으로 반응이 좋아요. ‘지금 우리 학교는’는 시즌2로 제작될 수 있을까요?

“2년 동안 스태프, 배우들과 혼신을 다해서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이야기 할 때 가진 진심이 있어요. 그 진심이 모이면 나이와 공간을 떠나서 사람들에게 전달될 거란 얘기를 종종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반응이 오는 걸 보며, 진심이 전달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신기하고 어떨떨해요. 시즌1이 잘 되고 길게 흥행하면 시즌2를 제작할 발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두 번째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시즌1이 학생들과 어른을 대비시켜서 삶과 죽음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생존이야기라면, 시즌2는 인간과 대비 돼서 살아남으려는 좀비들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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