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 학생들이 모인 동훈고등학교에 한지우(김동휘)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유독 수학에 약하거나 사회적 배려 대상자라 그런 건 아니다. 자신이 큰 손해를 보더라도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게 편하고, 선생님의 전학 권유가 부당한 걸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이 그가 동훈고에 머무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런 그에게 정체불명의 야간 경비 이학성(최민식)은 낯설고 불편하지만 기댈 수 있는 안식처다.
배우 김동휘에게도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는 어울리지 않는 무대였다. 첫 상업영화, 첫 주연작에서 대선배인 배우 최민식과 연기했다. 크레딧에 오른 순서는 두 번째지만 실제로 영화는 한지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난 25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동휘는 영화에서처럼 차분하고 단단한 말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오디션부터 그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꼈다.
“전 소속사가 없었어요. 상업영화나 장편영화 오디션을 볼 기회도 없었어요. 사실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소속사나 제작사에 프로필을 돌리면서 오디션이란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디션 기회가 왔지만 기회조차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오디션에서 저와 다른 한 분 빼고 다 소속사가 있으시더라고요. ‘여긴 아직 내가 오면 안 될 곳이구나’, ‘좀 더 나를 만들고 자신이 생겼을 때 와야겠다’고 생각했죠. 최민식 선배가 계시니까 내 연기를 보여드리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에 임했어요. 캐스팅된 후에도 실감이 안 났어요. 부모님과 주변 사람에게 전화로 말하면서도 의구심이 있었거든요. 첫 촬영을 하고서야 내가 이런 영화를 찍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김동휘는 자신을 선택한 박동훈 감독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냥 지우랑 제일 잘 어울려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대본을 받기 전이라,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대본을 읽고 ‘나와 닮은 모습이 많다’고 느꼈다. 그 후 한지우가 되어가는 시간을 보냈다. 박 감독과 매주 만나서 작품 이야기를 나눴다. 10대들의 말투와 수학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감독님과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만나서 대본 얘길 했어요. 한지우와 한지우가 생각하는 다른 인물, 작품에 대해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캐릭터 분석을 했죠. 대본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서 많이 보고 분석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에게도 수학은 해야 하니까 하는 학문이었어요. 감독님이 보내주신 리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리만을 처음 알았어요. 영화에 등장하는 세타나 함수 같은 수학 용어도 많이 공부했어요. 공식 하나를 집중해서 공부하진 않았고, 수학을 잘하는 친구에게 이건 왜 이렇게 되는지 물어보며 공부했어요. 또 요즘 10대들이 쓰는 말투가 궁금해서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10대 친구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지금 유행하는 건 무엇인지, 그들의 생각을 많이 물어봤습니다.”
김동휘는 고등학교 시절 춤 동아리를 하며 연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먼저 연기를 해보라고 제안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연기를 전공하며 공부하고 배우들의 인터뷰를 읽고 영상을 보며 혼자 연습도 많이 했다. 연기에 필요한 모든 걸 다 해봤다. 그러다가 기회를 잡았다. 최민식과 연기 호흡을 맞춘 순간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최민식 선배님과 함께한 매 순간이 에피소드였어요. 현장에서 한 번이라도 더 얘기하려고 했죠. 앞으로 연기하면서 언제 이런 대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광이고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최민식 선배님은 호랑이 같은 느낌이에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압도되고 포효하는 느낌이랄까요. 연기를 안 할 때는 주변 분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농담도 하면서 편하게 해주세요. 저에게도 친밀하게 다가오려고 하셨지, 연기 얘긴 거의 안 하셨어요. 서로 살아온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김동휘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며 요즘 시기에 어울리는 위로를 담은 아기자기한 영화라 생각했다. 특히 혼자 발버둥치는 지우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는데도 혼자 해결하려고 하는 지우가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안타까웠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제가 평생 연기하면서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은 작품이에요. 데뷔작이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는 의미도 남다르죠. 또 상대 역할이 완전 대선배님이잖아요. 여러모로 뜻 깊은 작품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