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이 말하는 몸과 마음, 영혼 [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이어령 선생이 말하는 몸과 마음, 영혼 [박한표의 사진 하나 생각 하나]

박한표 (우리마을대학 제2대학 학장)

기사승인 2022-03-04 11:53:59
박한표 학장
"그는 세상에 대한 훌륭한 카피라이터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을 한마디로 딱 찍어서 알려주고 시각을 열어줬던 분이었다." "그는 우리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며칠 전 별세한 이어령 선생에 대한 유홍준 선생의 추모이다. 고 이어령 선생은 호흡이 멈추는 순간까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죽음을 묘사하는 마지막 단어를 고르시었다. 그는 '탄생의 그 자리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즉 소멸을 향해 가는 자가 아니라, 탄생을 향해 가는 자라는 거다. 

시대의 지성, 그를 가장 최근에 글로 만난 것은, 2022년 1월 1일자 김지수 기자와의 인터뷰, "선한 인간이 이긴다는 것, 믿으라"였다. 인터뷰에서, 그는 컵 하나를 가지고 보디(몸, 육체)와 마인드(마음) 그리고 스피릿(영혼)을 설명했다. 이해가 잘 되었다. 컵이 육체이다, 죽음은 이 컵이 깨지는 거다. 유리그릇이 깨지고 도자기가 깨지듯이 내 몸이 깨지는 거다. 그러면 담겨 있던 내 욕망도 감정도 쏟아진다. 출세하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돈 벌고 싶은 그 마음도 사라진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원래 컵 안에 있었던 공간이다. 그 게 스피릿, 영성이다. 

원래 컵은 비어 있다. 거기에 뜨거운 물, 차가운 물 등이 담기는 거다. 말 배우기 전에, 세상의 욕망이 들어오기 전에, 세 살 핏덩이 속에 살아 숨 쉬던 생명, 어머니 자궁 안에 웅크리고 있을 때의 허공, 그 공간은 우주의 빅뱅까지 닿아 있다.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는 컵 안에 존재했던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게 스피릿, 영성이다. 우주에 충만한 생명의 질서, 그래서 우리는 죽으면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라 했다. 

그는 컵(육체)이 깨지고, 그 안에 담긴 물(욕망 감정 등 마인드)이 쏟아져도 컵이 생길 때 만들어진 원래의 빈 공간(영혼)은 우주에 닿아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로 우리를 위로했다. 그러나 자주 '마인드를 비우고, 하늘의 별을 보라'고, '빈 찻잔 같은 몸으로 매일 새 빛을 받아 마시며 살라, 비어 있는 중심인 배꼽(타인과의 연결 호스)과 카오스의 형상인 귀의 신비를 잊지 말라'고 우리를 다독였다. 


그는 암을 앓는데도 항암 치료를 받지 않고, 집에서 죽음을 맞으며, 투병이라는 말보다 '친병'이 좋다고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동양은 영혼과 육체를 하나로 본다. 상호성이 있다는 거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싶다. 많은 사람이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누구나 죽는다. ‘내일이 없어, 오늘이 전부야’라고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농밀한 순간이다. 그런 생각으로 사는 것이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암이 뉴스가 아니다. 그냥 알고 있던 거다." 

그의 삶을 그리는 바탕은 인법지(人法地)라고 했다. 인간은 땅을 따라야 한다. 땅이 없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리고 지법천(地法天)이다.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한다. 땅에 하늘이 없으면 못산다. 그 다음은 천법도(天法道)이다. 하늘은 도를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이다. 도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 여기서 자연은 스스로 된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다. 이 세상에 스스로 된 게 있나? 의존하지 않는 게 있나? 의지하는 뭔가가 없다면 그 자신도 없어진다. 그러니 '절대'가 아니다.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ego eimi)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하면, '아이 엠(I am)이다. 프랑스어는 '즈 수이(Je suis)'이다. 나는 나이다. 나는 스스로 있다는 말이다. 그건 무엇에 의지해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스스로 있는 것은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다. 그걸 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격신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절대 존재이다. 너도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다 신이다. 나는 지난 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잘 읽었는데, 그리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 삼가 고인 명복을 빈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