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권력형 성범죄를 사과하고 여성정책을 강조했지만 비동의강간제, 차별금지법 등의 법안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이 후보는 지난 2일 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권력형 성범죄를 사과했다. 이 후보는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이 권력형 성범죄를 저지르고 당도 ‘피해호소인’이라는 이름으로 2차 가해에 참여한 분들이 있다”며 “그 책임을 지지않고 끝까지 공천했던 점에 대해 질타하신 것을 안다. 이에 앞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앞서 민주당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권력형 성범죄 당시 피해자가 아닌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했다. 특히 고민정‧남인순‧진선미 등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이 단어를 사용해 많은 질타가 쏟아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가 이해람 중사 사건을 언급하면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당과 후보의 입장을 표명하라고 하자 이 후보는 “찬성하지만 당이 제가 시킨다고 하루만에 할 수 없다”며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비동의강간제에 대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사항이고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심 후보는 “원전, 차별금지법, 국민연금, 비동의강간죄 다 사회적 합의를 언급한다”며 “정치적 어법으로 보면 다 안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정의당에서는 민주당의 태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민주당이 정의당을 노동자만을 위한 정당이라고 기상천외한 전술을 펴기 시작했다”며 “정의당은 노동자와 여성을 위한 정당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추모 행렬 속에 2차가해가 나왔다”며 “이때 가장 먼저 ‘피해자와 연대’를 선언했던 사람이 류호정,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후보가 씨리얼과 닷페이스 등에 출연하는 것을 고민했다”며 “심 후보는 차별금지법, 비동의강간죄를 당당히 10대 공약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후보의 행적을 지적하면서 여성정책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강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 하겠다는 말이라도 했지만 이 후보는 그런 말도 못한다”며 “닷페이스가 페미니스트 방송이라고 표가 떨어질까봐 출연을 번복했고 ‘페미니스트 몰아내달라’는 글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도 이 후보의 행적과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정의당은 페미니즘을 진정성 있게 하는 정당이 맞고 심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이 확고하다”며 “이 후보는 여성의 신체를 훼손한다는 욕설을 하고 흉기로 37회 사람을 난자한 데이트 폭력 사건에 대해서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인권에 무지한 후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가 말하는 ‘사회적 합의’는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언급된 NATO(Not Action Talk Only)와 비슷한 태도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 후보가 하겠다고 언급할 경우 책임 소재가 생길 수 있어 피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후보가 법안들을 꼭 하겠다고 하는 경우 민주당이 과반의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시행이 가능하다”며 “법안들이 통과될 경우 책임이 생기고 유권자들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행동은 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NATO식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비동의강간죄와 차별금지법은 정의당이 도와서 친여 무소속 의원들을 합칠 경우 패스트트랙도 넘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정의당에 노동자의 당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것”이라며 “실제로 정의당은 진보가치를 추구하는 당”이라고 말했다.
임현범 기자 limhb9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