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다른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넷플릭스 다큐깨기⑧]

분명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다른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 [넷플릭스 다큐깨기⑧]

기사승인 2022-03-05 06:58:02
넷플릭스 캡처

재선에 성공한 후 임기를 무사히 마친 대통령의 마지막 지지율은 87%였다. 군사정권의 시대를 마치고 국가의 경제를 살린 덕분이다. 후임 대통령은 그의 후계자로 독재정권 시절 투옥됐던 게릴라 전사였다. 그 역시 재선에 성공했지만 경제가 나빠지며 대통령의 지지율은 6%까지 추락했다. 전임 대통령은 기업과 비리로 연결됐다는 의혹을 받으며 구속됐다. 후임 대통령 역시 비리 의혹을 받으며 탄핵 위기에 빠졌다. 명확한 근거가 없어 검찰이 대통령을 기소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2019년 6월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는 브라질의 현실 정치 상황을 다룬 영화다. 과거 노조를 이끌었던 룰라 다 실바 브라질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그의 유산은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룰라 전 대통령은 판사과 검사들에 의해 표적 수사를 당한다. 지우마 전 대통령은 의회로부터 탄핵을 당한다. 거리엔 시민들이 둘로 나뉘어 시위를 벌인다. 뉴스는 매일 해당 사건을 보도한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브라질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니. 잘 몰랐던 타국의 정치 상황과 역사를 상세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브라질 정치 역사의 한복판에서 자란 페트라 코스타 감독이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의 삶을 언급하며 쉽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중요한 순간에 놓인 대통령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전해듣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충실하게 촬영한 느낌이 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실감을 들게 한다.

무엇보다 한국 정치 상황과 닮았다. 과거 독재정권 아래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인 평범한 사람들, 최근에야 민주주의를 되찾은 국민들,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대통령, 그리고 첫 여성 대통령의 탄핵과 둘로 나뉜 국민들의 시위까지. 유독 국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한국 정치 역사와 브라질 정치 역사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가며 보게 된다. 지난달 21일 열린 제20대 대통령선거 제1차 후보자토론회 도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경제 위기를 불러온다”라며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위기의 민주주의’를 봤는지 물었다. 윤 후보는 “봤다”고 답했다.

민주주의와 정치 상황에 대해 말하는 시민들의 인터뷰가 등장하는 순간이 가장 흥미롭다. 우리가 책에서 배웠던, 직접 몸으로 겪었던 민주주의와 브라질 국민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군사정권이었던 과거가 좋았다”고 말하는 시민의 뒤에서 “네가 그 시절을 살아봤냐. 그 때 내 사촌이 죽었다”고 분개하는 시민이 갈등을 벌이는 장면은 대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큰 선거가 이어지는 2022년 지금, 한국 시청자에게 특히 많은 의미를 주는 다큐멘터리다. 지워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으면 좋을 작품이다. 다음에 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는 ‘폭군이 되는 법’이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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