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와 체리피킹(Cherry Picking)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와 체리피킹(Cherry Picking) [정동운의 영화 속 경제 이야기]

정동운(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교수)

기사승인 2022-03-09 11:36:08
정동운 전 대전과기대 교수
‘2등은 없다. 오직 1등만이 살아남을 뿐이다.’라는 사실은 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사실인지 모른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경쟁이 점점 심화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좋은 성적이나 승진처럼 한 조직 내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행복의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생각을 담고 있는 제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당시 ‘학력고사’라는 대입시험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사랑, 우정, 고민, 갈등 등을 그린 영화로, 성적비관 자살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었다.

고교 2학년인 봉구(김보성), 천재(최수훈), 창수(김민종)는 단짝이다. 성적이 밑바닥인 봉구는 수시로 전교수석을 차지하는 실력이 있는 은주(이미연)를 좋아하고 천재는 양호 선생님(최수지)을 짝사랑한다. 창수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머니를 도와 청소 리어카를 끄는 노동을 한다. 부모님 때문에 성적에 대한 집착이 강한 은주는 강박 관념에 시달린다. 은주의 심경은 “난 앉아서 공부만 하기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정말 사람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데. 이 모두는 우리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던 중 봉구의 순수한 열정에 마음이 흔들린다. 잠시 학교와 가정을 떠나 둘은 야외에서 삶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온 은주는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떨어지게 되고 부모의 냉랭한 시선을 받던 은주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한다. “성적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고, 친구가 친구를 미워하게 된다.… 하나님 왜 이렇게 무서운 세상을 만드셨나요. 선생님 왜 우릴 이렇게 무서운 세상에 살게 내버려 두셨나요. 행복은 결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은주의 유서는 그녀의 아픔을 잘 보여준다. 이 내용은 실제로 1986년 1월 15일 새벽, 목숨을 끊은 중학교 3학년생의 유서의 일부이다. 은주의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반 친구들에게 “그런 감상은 때려 치워라”라는 수학선생의 말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일 뿐이며, 우리 청소년들에게 놓여있는 극단적인 경쟁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텅빈 은주의 책상에는 꽃 한 송이가 놓이고 영구차가 학교를 한 바퀴 도는 가운데 봉구와 아이들은 비통한 눈물을 흘린다.

체리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체리를 딴다’는 뜻으로, 체리 나무에서 ‘탐스럽게 잘 익은 체리만 따고, 나머지는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어떤 대상에서 좋은 것만 고르고, 나쁜 것은 고르지 않는 행위를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오늘날에는 의미가 더 확장되어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는 부분은 버리고 자신이 확실하게 원하는 부분만 취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영화에서 1등만 소중하고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바로 이를 지칭한다.

경제적 측면에서 체리피킹의 적용 예는 금융권에서 흔히 사용되는데, 프라이빗 뱅킹에서 거래 규모와 수익률이 높은 고객만 골라서 유치하는 것, 또 특정 펀드에 우량 자산만 골라서 편입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마케팅에서의 체리피킹은 고객이 한 회사의 상품 중 특정 상품만을 구입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런 행위는 마케팅 활동의 생산성을 저하시킨다.(김재문, “체리 피킹(Cherry Picking)”, LG경제연구원, 'LG주간경제', 813호, 2005. 1. 5.) 그리고 소비자가 여러 회사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 포인트 등의 혜택만 받아가는 현상도 체리피킹이라 한다.

2등이 있기 때문에 1등도 있다. 영화 속 청춘들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된다. 승리를 강요하는 사회가 아이를 죽이고 있지만, 이러한 우리사회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지만, “靑春이 아픈 건 죄악이랍니다”라던 K양의 편지 속 한 구절을 새삼 떠올리게 된다.
최문갑 기자
mgc1@kukinews.com
최문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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