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OTT 기업들이 대규모로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ISP(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와 ‘망 사용료’를 두고 끊임없는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연이은 소송에도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국회에서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못해 뒷짐을 지고 있다는 평가다.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갈등은 지난 2019년부터 시작됐다. 3년간 이어져 온 갈등이지만 여전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도 특별한 법안이나 규제책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 단순 소송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6일에는 2차 변론이 진행됐다.
◇ 넷플릭스 ‘지급 못해’ vs SK브로드밴드 ‘지급해라’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입장은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넷플릭스는 ‘OCA(오픈 커넥트 얼라이언스)’와 망 중립성, ‘Bill and Keep’을 언급하면서 망 사용료를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페이스북 등 외국계 콘텐츠 기업들의 망 사용료 지급 사례를 들면서 비용 지급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Bill and Keep’은 ISP사 간에 데이터 송수신 시 트래픽을 별도 계산하지 않고 1.8배까지 동일 가격으로 규정해 비용을 받지 않는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OCA를 이용하면 망 사용료 95~100%까지 줄일 수 있다”며 “망 중립성의 원칙으로 사용료를 지불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외 7200개 ISP 중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통행세’를 받으려 한다”며 “Bill and Keep 원칙에 따라 상대 ISP에 비용을 요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반면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망 중립성 원칙은 특정 콘텐츠를 차별해 송출하지 않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며 “OCA를 사용해 해외 서버에서 콘텐츠를 가져온다고 해도 국내 이용자에게 전송하는 것은 망 사용료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외 콘텐츠 사업자 중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 곳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두 군데밖에 없다”며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공 기업이지 ISP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Bill and Keep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 3년간 이어진 넷플릭스, SKB 소송…‘LG유플러스 KT는 왜 관망?’
망 사용료를 두고 지난 2019년 양 사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중재 요청을 했지만, 넷플릭스가 2020년 4월에 고소를 진행하면서 중재가 무산됐다.
이후 양 사는 1년 2개월간의 소송 끝에 지난해 6월 SK브로드밴드의 승소로 끝났다. 당시 넷플릭스가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700억원대로 2020년 넷플릭스 매출액 4154억원의 16.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소송 이후에도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넷플릭스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맞서 SK브로드밴드는 민법 부당이득반환 법리에 근거해 반소를 제기한 상태다. 결국 지난 16일 2차 변론이 진행됐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중재 결과를 코앞에 두고 넷플릭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소를 진행했다”며 “중재 결과를 알지 못하면 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ISP와 콘텐츠 제공 기업의 첫 판례가 될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제휴 협약을 맺은 LG유플러스와 DA(기밀 유지 협약)를 맺은 KT는 관망하는 모양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넷플릭스와 제휴 상태로 계약을 통해 비용을 받고 있다. 이 비용에는 망 사용료가 포함됐다”고 말했다. KT는 “정당한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며 “계약은 타 사업자와의 문제기 때문에 구체적인 수치와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ISP 관계자는 21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SKB가 소송에서 승리해서 요구한 ‘망 사용료’를 지급받게 되면 나머지 ISP 계약 구조가 변경될 수 있다”며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양질의 콘텐츠 공급처인 한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국내외 관심이 쏠린 소송…‘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전 세계 IT ‘테스트배드’로 불리는 국내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국내외 관심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망 사용료’와 관련된 법안은 7개의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 2020년 12월부터 발의된 7개의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해당 개정안은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시작으로 변재일 민주당 의원, 김상희 민주당 의원, 이원욱 민주당 의원,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양정숙 무소속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통과하지 못해 실효성이 없는 상태다.
정부에서도 큰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관련 법안이 없기 때문에 규제할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교섭 과정 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라고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7개의 개정안이 사전규제, 사후규제 등을 다 다르게 가지고 있는 상태”라며 “이를 합리적으로 조율하기 위해 법안이 계류 중인 상황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논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망 이용대가는 규제하는 법안이 없었기 때문에 양 사의 갈등에 개입하기 어려웠다”며 “사전 규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담당하게 되고 사후 규제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담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금액을 지정해서 규제하는 방식이 아닌 협약 내에서 일방적인 갑질을 살펴보게 된다”며 “부대설비를 두고 차별적인 요구가 없었는지도 확인하게 된다”고 답했다.
임현범 기자 limhb9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