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과거 한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행어입니다.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뒤 수습을 위해 덧붙이는 말이었죠. 전 국민이 아는 유행어가 되면서 이 말은 모습을 바꿔가며 여러 곳에서 쓰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말도 나왔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봐야지 현실이라 착각하지 말자는 뜻이죠. 농담처럼 하는 말이라기엔 굉장히 위험한 접근입니다. 대중매체의 파급력을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현재 방송 중인 몇몇 드라마를 두고도 이 말이 나왔습니다.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JTBC ‘서른, 아홉’, KBS2 ‘신사와 아가씨’가 바로 그렇습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주인공인 미성년자와 성인이 서로에게 힘이 되다 사랑으로 이어져 문제가 됐습니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연애를 미화한다는 지적이 이어졌죠. ‘서른, 아홉’은 불륜에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두 사람이 집안 반대로 어쩔 수 없이 헤어졌으니까, 여자가 시한부 환자니까, 불륜 상대인 전 남자 친구가 사기 결혼을 당했으니까… 불륜에 여러 이유가 따라붙습니다. ‘신사와 아가씨’에도 죽음을 앞둔 인물이 나옵니다. 남편이 아내에겐 비밀로 한 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전 부인을 알뜰히 살핍니다. 이를 안 아내가 불같이 화를 내자 남편은 도리어 일갈합니다. “그 여자 췌장암이야!”, “그 사람 단단이(딸) 낳아준 엄마야!” 그 황당해하는 아내를 두고 남편은 그대로 집을 나갑니다.
드라마니까 하고 넘어가기엔 다소 불편한 소재들입니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연애, 가정이 있는 사람과의 만남, 가정이 있음에도 전 부인과 관계를 지속하는 행위 모두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니까요. 민감한 소재를 다루는 드라마의 태도는 더 위험합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성인인 남자 주인공과 미성년자인 여자 주인공을 서로의 구원자로 그리며 연애 감정이 발현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묘사했습니다. ‘서른, 아홉’은 불륜을 반대하던 친구들까지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방향으로 노선을 선회했습니다. 시한부로서 행복한 죽음을 맞게 하기 위해서요. ‘신사와 아가씨’는 남편의 외도에 노발대발하는 아내를 악역처럼 묘사합니다. 이 드라마들은 모두 부적절한 관계에 애써 살을 붙이며 시청자가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게끔 유도합니다.
드라마에 깊이 몰입한 시청자들은 이를 불편해하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유난으로 받아넘깁니다. 그들은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고 드라마 속 세계관에 그친다고 합니다. 창작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되고 인물들에게 그럴 만한 서사가 있다고도 하죠. 여러 이유는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보라’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그들에게 드라마를 지적하는 시청자는 드라마와 현실을 분리해서 볼 줄 모르는 예민한 사람일 뿐입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 같은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작품 안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때도 많죠. 18세기 출간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모으자 주인공 베르테르에 공감한 청년 세대가 그를 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이어져 발간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2012년 영화 ‘다크나이트 라이즈’(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가 개봉됐을 당시 한 20대 청년이 영화 상영 중에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대중매체는 극적인 설정을 정당화하는 것에 경계해야 합니다. 불륜이나 성인과 미성년자의 사랑을 시청자들이 이해할 만한 관계로 그리는 건, 현실에서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관계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가 유해한 사랑을 무해하게 그리는 건 그래서 위험합니다. 자극적인 설정으로 눈길을 끌다가 선을 넘는 드라마보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드라마가 더 많아지고 주목받길 바랍니다. 그럴 만하다 할 수 있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니까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