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보세요, 세상에 어떤 사람이 ‘널 가져야겠어’라고 고백을 하겠어요! 하하하…”
배우 김태리는 밝고 거침없었다. 일순간 나희도가 된 듯 격앙된 어조로 드라마 내용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다가 이내 김태리로 돌아와 연기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냈다. 나희도는 지난 3일 종영한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김태리가 맡은 역할 이름이다. 극 중 펜싱 선수인 나희도를 표현하기 위해 반년 가까이 펜싱 훈련을 받았다. 고등학생 느낌을 살리고자 팟캐스트에서 10대들의 말투를 배웠다. 나희도가 돼가며 느낀 희열에 김태리의 마음도 세차게 뛰었다.
이 같은 경험에 대해 지난 31일 화상으로 만난 김태리는 “설렜다”고 단언했다. 처음 대본을 받던 그 순간부터 김태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와 사랑에 빠졌다. 시작은 호기심이었다. “보자마자 소리부터 질렀다. ‘이게 뭐야?’, ‘이렇게 시작한다고?’, ‘이렇게 끝난다고?’라고 했던 기억만 난다”고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희도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라고 말을 이었다. 나희도를 연기하는 게 너무나도 기다려졌단다. 나희도 예찬론을 펼치는 김태리의 눈은 더없이 반짝였다.
“아시다시피, 희도는 정말 사랑스럽고 건강하게 빛나는 아이예요. 때로는 휘몰아치는 감정에 마구 급발진하기도 하죠. 세상에 누가 고백을 ‘널 가져야겠다’고 해요. 희도니까 그렇게 하죠. 정말 활달하고 밝았어요.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면 물구나무라도 섰을 거예요. 뭘 해도 사랑받는 캐릭터를 연기해서 신나고 행복했어요. 방송분을 보면서 ‘더 흥나게, 자유롭게 해도 됐겠는데?’ 싶었을 정도예요.”
펜싱은 나희도의 전부다. 그런 만큼 김태리는 긴 기간 훈련에 매진했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욕심을 냈다”고 돌아보던 그는 “‘뻐렁친다’는 감정을 느꼈다”며 펜싱에 큰 애정을 보였다. 훈련 초 1점도 못 내던 펜싱 초보 김태리는 기본자세부터 차근차근 배워간 끝에 15점 내기 게임에서 이길 정도로 부쩍 실력이 늘었다.
“펜싱을 정말 잘하고 싶었어요. 감독님은 연출을, 스타일리스트는 의상을 맡는 것처럼 각자 영역이 있잖아요.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될 뿐인데도 펜싱에 자꾸 마음이 가더라고요. 6개월 가까이 훈련했어요. 나중에 방송을 보는데 펜싱 장면에 OST가 어우러지니까 전율이 일더라고요. 청춘 이야기와 펜싱 사이에서 균형을 잃을까 걱정도 됐지만, 감독님이 연출을 정말 잘해주신 덕분에 만족스럽게 잘 나왔어요. 아, 펜싱 선생님이 저보고 ‘너무 잘한다’, ‘어릴 때부터 했으면 선수도 했겠다’고도 해주셨어요. 흐흐, 정말 감사했죠.”
실감 나는 연기 덕분일까. 실제 친구들 사이에게 ‘학창 시절의 너 같다’며 연락을 자주 받았단다. “서른셋인 제게도 희도 같은 면이 남았나 보다”며 깔깔 웃던 김태리는 “촬영하면서도 제 자신을 누르려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말을 이어가던 김태리는 결말 이야기가 나오자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울적한 얼굴이 됐다. 마지막회에서 나희도는 백이진(남주혁)과 끝내 이별하고 각자 삶을 살아간다. 드라마가 막을 내리기 전까지 시청자들은 나희도의 ‘진짜 남편 찾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하던 김태리는 여전히 작품에 푹 빠져 보였다.
“사실 시청자분들이 나희도의 남편이 누군가를 추리하시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남편도 후보군이 있어야 찾잖아요. 하지만 나희도는 문지웅(최현욱)을 만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백이진 뿐이었어요. 하지만 결말이 끝내 그렇게 났죠. 연기한 저 역시도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빛나던 아이가,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며 성장한다는 게 정말 슬펐어요. 하지만 작가님이 그런 희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신 거니까 받아들여야죠. 시청자로선 정말 슬프지만요.”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그에게 나희도는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나희도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과정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백이진으로부터 결혼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나희도의 감정은 지금도 물음표다. 쉽지 않은 흐름을 함께 따라가 준 남주혁은 고마운 존재로 남았다. 김태리는 “인터뷰하며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돌아보니 재미있으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좋은 기억만 남은 작품”이라고 반추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로 많은 걸 배우고 알았어요. 저는 매 작품마다 느끼는 모든 스트레스가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번 작품으로는 배움을 온몸으로 느꼈죠. 힘든 순간이 정말 많았어요. 너무 힘들어서 묫자리를 알아볼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다 끝내니까 이제는 너무 감사해요. 힘들 수 있어 행복해요. 그만큼 제게 남은 게 많다는 거잖아요. 고통에 감사할 만큼 오래도록 소중히 남을 것 같아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