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수출국’ 오명 언제쯤 벗을까

‘아동 수출국’ 오명 언제쯤 벗을까

“한국은 선진국, 해외입양 지속할 당위성 있나”
미혼·한부모 가정에 충분한 양육지원 필요

기사승인 2022-04-07 07:00:07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은 6일 개최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우리는 언제 비준하는가?’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입니다. 기존의 관성적 틀을 뛰어넘어야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은 6일 개최된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우리는 언제 비준하는가?’ 포럼에서 오랫동안 해외입양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양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 비율은 전 세계 3위로 파악될 정도로 높다. 박 사무처장은 “해외입양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친생 가정 양육과 국내입양 활성화를 추진하는 적극적인 조치까지 필요한 상황”이라며 “헤이그 협약 비준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진단했다. 

헤이그 국제 아동입양 협약(헤이그 협약)은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입양 규정이다. 입양 조건, 절차, 국가의 책임을 규정한 국제 협약으로 지난 1993년 헤이그국제 사법회의에서 공식 채택됐다. 현재 104개 국가가 가입했다. 우리나라는 2013년 서명했지만, 아직 비준하지 않아 강제력이 없다. 

복지부·아동권리보장원이 입양 ‘중앙 당국’ 기능해야

헤이그 협약 비준의 선결과제는 입양 제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안문희 한국법학원 연구위원은 “입양제도에 대한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의 명확한 권한과 역할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헤이그협약은 입양이 보충적·부차적 수단이며, 아동의 복리를 위해 아동의 출신국 내 입양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한 헤이그협약을 비준하려는 국가는 정부가 해외입양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엄격히 운영하고, 입양 업무를 위임받은 비영리단체들의 윤리적 수준과 역량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입양제도를 총체적으로 관리할 ‘중앙 당국’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입양제도의 대부분을 민간 기관에 의존하고 있으며, 보건복지부, 외교부, 아동권리보장원 등의 기관에 업무가 분산되어 있다. 모든 업무를 단일한 기관에서 수행하기는 어렵지만, 관계 기관들을 관리하고 조율할 권한 있는 책임 주체는 반드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안 위원의 분석이다.

로라 마티네즈 모라 헤이그국제사법회 사무국 서기관이 주제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유튜브 갈무리

“한국은 선진국, 해외입양 지속할 당위성 있나”

두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로라 마티네즈 모라 헤이그국제사법회 사무국 서기관은 “선진국으로서 해외입양을 지속하는 국가는 드물다”며 해외입양의 필요성을 성찰할 것을 권고했다. 우리나라의 해외입양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후 빈곤에 시달렸던 시기 해외입양은 아동에게 유익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준을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재 아동에게 최선의 선택지는 국내입양이다. 로라 서기관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등 입양 건수가 많은 해외 주요 국가에서도 대부분의 아동들이 국내입양된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까지도 아동을 국내에서 보호하지 못하고 해외로 보낸다면,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미혼·한부모 가정에 충분한 양육지원 필요

마지막 주제발표자 데이비드 스몰린 미국 샘포드대 로스쿨 교수는 “미혼 부모도 자녀를 양육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혼인 부모로 이뤄진 가정은 아동에게 유익한 환경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같은 사실이 자녀를 양육하는 미혼 가정의 소외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입양되는 아동은 대부분 미혼모의 자녀인 만큼, 정부가 미혼모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실시하고 있는지 재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아동을 위해 가능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할 의무를 진다. 이는 곧 미혼 가정을 제도적·경제적으로 지원해, 혼인 가정만큼 안정적으로 자녀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교수는 미혼·한부모 가정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태도를 해소해야 할 문제점으로 꼽았다. 또한 정부가 미혼·한부모 가정의 사회적 입지를 넓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유튜브 갈무리

이어진 토론회는 노충래 이화여자대학교 아동가족연구소 교수를 좌장으로 △에이릭 하게네스 해외입양인연대 사무총장(노르웨이 입양인) △전현숙 진실의자리 대표(해외입양인 생모) △정동혁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입양전담 판사) △강정은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국가인권위원회 아동인권전문위원회 전문위원)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에이릭 사무총장은 헤이그 협약 비준을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출생 후 국내입양됐지만, 이후 다시 노르웨이로 해외입양됐다. 에이릭 사무총장은 “정부는 헤이그협약에 2013년 서명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답보 상태”라며 “해외입양인의 주축은 현재 평균 40대가 됐고, 지금까지 20여만명의 아동이 15개국으로 입양됐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입양인의 관점에서 비준은 이미 과거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준 된다면 해외입양인들의 뿌리 찾기와 기록 열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대표는 입양제도 정비에서 나아가, 아동과 원가족이 분리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가장 큰 이유로 빈곤을 꼽으며 “형편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감정에 한 아기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건 가혹하다”고 말했다. 이어 “입양은 개인과 그 가족만의 일이 아닌, 가족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이야기”라며 “아이가 친생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해외입양되면서)자기를 보호해 줄 나라에서조차 분리되는 일은 이제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판사는 입양 관련 기관의 협업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입양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국내입양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있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며 “아동통합정보시스템을 활용한 관련 기관과의 정보공유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고, 입양 절차 전반에 대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입양허가 이후에도 입양아동과 입양가정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및 사후관리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강 변호사는 차선책인 해외입양을 점차 줄이기 위한 구체적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헤이그 협약의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출생 등록제도의 도입, 공공 아동보호체계의 강화, 원가정양육 지원 등이 함께 이행되어야 한다”며 “입양정보공개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입양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동의 입양은 민간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라는 점을 분명히 선언하고, 아동 최선의 이익을 현장에서 작동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 내용과 과정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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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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