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장애인 사회를 만나는 ‘복지식당’ [쿡리뷰]

우리가 몰랐던 장애인 사회를 만나는 ‘복지식당’ [쿡리뷰]

기사승인 2022-04-09 06:17:01
영화 ‘복지식당’ 포스터

영화 ‘복지식당’(감독 정재익, 서태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의 반복이다. 휠체어에 앉은 한 청년이 담담하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한눈에 장애인이란 걸 알 수 있지만, 첫 장면에선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는 잘 알 수 없다. 96분 동안 영화가 흐르는 동안 낯설고 다르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의 삶으로 미끄러지듯 걸어 들어간다. 그가 왜 그렇게 이야기해야 했는지, 그 말에 어떤 삶의 무게가 실렸는지 이해하는 시간을 지나면 마지막 장면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복지식당’은 사고로 홀로 움직이기 힘든 중증 장애를 가졌지만, 제도의 문제로 경증 장애 영구 판정을 받은 재기(조민상)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장애 정도가 심한 중증(1~3급)이 아닌 경증 5급 판정을 받은 후 재기의 삶은 복잡하게 꼬인다. 전동 휠체어와 지팡이를 구하기 어렵고, 장애인 콜택시를 부를 수도 없다.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경증 장애인을 원하는 곳에 중증 장애라는 이유로 취직하기도 어렵다. 제도를 잘 아는 장애인 병호(임호준) 덕분에 론볼을 시작하며 취직의 길이 열리고, 대출을 받아 장애 등급을 바꾸는 행정 소송도 시작한다. 잘 풀릴 것만 같던 재기의 앞날은 생각만큼 밝지 않다.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장애인 세계 깊숙이 들어가는 영화다. 기존 영화들이 대부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야기를 통해 둘이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왔던 것과 다르다. ‘복지식당’은 장애인들이 직접 마주하는 이동권, 자립, 인간관계 등 피부에 와 닿는 일상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일들을 다룬다. 장애 등급을 잘못 판정받은 황당한 일은 재기의 삶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킨다. 당연히 바로잡아야 하는 일처럼 생각되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좌절을 불러온다. 중증 5급 장애인 앞에 나타난 '달리는' 2급 장애인이 도움을 주는 등 아이러니한 상황들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지지만 편하게 웃을 순 없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장애인 세계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장애인들은 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재기를 익숙한 일인 듯 받아들인다. 매일 롬볼을 하러 체육관에 나가고,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매일 같이 술을 마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일상을 보낸다. 장애인 세계에 존재하는 권력 관계는 각자의 삶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 사방에 존재한다. 장애인을 위한 제도지만 그 높은 벽을 장애인이 직접 넘어야 한다. 장애인 세계로 진입하는 재기에겐 인간답게 사는 것, 자립하는 것이 점점 크게 자리잡는다. 관객 역시 장애인의 삶과 자립이 어떤 의미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

극 중 재기처럼 중증 장애를 가졌으나 5급 판정을 받은 정재익 감독의 경험담이 영화의 소재가 됐다. 장애인 이동권 논쟁이 펼쳐지는 지금, 장애인 권리가 갖는 의미를 생각하기 좋은 영화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경쟁, 제4회 제주혼듸독립영화제, 제16회 런던한국영화제, 제5회 원주옥상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오는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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