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4월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관련 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했다.
지난해 1월1일, 낙태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사를 처벌하는 법은 사라졌다. 그러나 임신중단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3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대체 입법이 여전히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낙태죄 폐지 1년 넘었는데… 정부‧국회 논의 ‘제자리’
낙태죄가 법적 효력을 상실한지 1년 3개월이 넘었지만 제도적 보완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법 개정 시한을 3개월 앞둔 지난해 10월에야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전면 허용하되 그 이후인 15~24주엔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낙태죄 틀 자체는 유지하는 셈이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임신 주수제한을 두고 범진보와 보수정당의 의견이 엇갈렸다. 권인숙‧박주민 민주당 의원, 이은주 정의당 의원 등은 낙태죄를 완전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반면 조해진‧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낙태죄를 유지한 채 낙태 허용 주수를 10주로 낮추는 개정안을 내놨다. 이밖에 인공임신중단에 대한 보험급여를 실시할 수 있게 하도록 하는 법안(남인순 민주당 의원)도 발의됐다.
그러나 낙태죄 후속입법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낙태죄 관련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을 발의한 권인숙 민주당 의원실은 11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입법 공백 상황”이라며 “주수제한 완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내놨지만 관련 상임위에서 논의 자체가 아예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건보 적용‧낙태약 도입 검토해야
낙태죄 폐지 이후 여성들은 안전한 방법으로 임신중단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어야 했다.
헌재 결정 전후 한 번씩 두 차례 임신중지를 했다는 ‘졔졔(가명)’는 달라진 게 없다고 성토했다. 그는 10일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집회에서 “지난 두 차례 모두 법과 사회가 재생산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낙태죄는 폐지됐으나 관련 법령이 정비되지 않은 탓이다. 임신 중단 방법은 크게 수술과 약물로 나뉜다. 수술을 원할 경우 수술비 부담이 크다는 것이 문제다. 202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수술적 임신 중지를 경험한 여성 중 81.6%가 의료비 부담된다고 호소했다. 일부는 수술비 마련을 위해 대부업체를 이용해 지불하는 방법을 택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의약품을 구입해 임신을 중단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인공임신중절약인 ‘미프지미소(미프진)’ 구입은 불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탓에 일부 여성들은 음지에서 임신중지약물을 구입, 복용해 부작용을 호소하는 등 문제도 발생했다.
미프진은 수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평가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부터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에 현대약품이 지난해 3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네셔널과 공급 계약을 체결해 7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다만 아직도 승인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11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심사과정 중 업체에 보완 자료 제출을 요청했으나 업체에서 제출시기 연장 요청을 해왔다. 자료 제출이 끝나면 식약처에서 타당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료계‧시민단체들은 낙태죄 입법 공백을 해소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낙태죄 폐지 1년 4.10 공동행동 기획단은 10일 “방치된 의료 체계 속 여전히 많은 여성이 높은 임신중지 의료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임신중지 관련 상담, 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 안전하고 비교적 저렴한 유산유도제에 대한 실질적인 접근성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며 “모두에게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법·제도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도 11일 성명서를 통해 “권인숙, 이은주 의원 등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과 의료법 등 관계 법령 개정안도 제출돼 있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공백을 해소하고 안전한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며 “여성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안전한 임신중지 약물의 허가, 임신중지 의료행위의 건강보험 적용, 낙태죄 폐지에 따른 대안입법 마련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