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참치로 친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동원산업에 대한 소액주주의 시선이 곱지 않습니다. 동원그룹이 동원산업과 비상장 지주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을 결정했기 때문인데요.
지난 7일 동원산업은 1대3.84 비율로 비상장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습니다. 동원엔터 1주당 동원산업 3.84주가 제공되는 셈이죠.
동원산업은 동원산업 기업가치를 약 9100억원(산술평균주가 24만8961원 적용)로, 동원엔터프라이즈는 약 2조2000억원(주당 19만1130원 적용)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를 1대5 액면분할 하니 합병 비율이 1대3.84로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상장사인 동원산업이 비상장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보다 기업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회사 측이 제시한 대로 합병할 경우 동원산업의 소액주주는 지분 희석을 감수해야 하지만 오너 일가는 절반에 가까운 동원산업 지분을 확보합니다.
소액주주와 펀드매니저들은 오너일가가 소유한 동원엔터프라이즈를 후하게 평가해 대주주에게 유리한 합병을 꾀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부 소액주주와 자산운용사들은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대 주주만 배를 불리는 합병은 지속해서 이어져 왔습니다. 과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대0.35의 비율로 합병했습니다. 삼성물산의 가치가 제일모직의 3분의 1 수준으로 평가됐죠. 이재용 부회장은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습니다. 이재용 지배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삼성물산 가치를 낮추고, 제일모직 가치를 높인 것이죠.
여기서 삼성바이오 분식회계가 불거졌습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제일모직의 자회사입니다. 삼성은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주가를 뻥튀기해야 했습니다.
실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했던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조 9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2011년 설립 이후 지속해서 적자를 보던 기업이 1년 만에 2조에 가까운 매출을 올린 것이죠.
합병에 반대한 일성신약과 소액주주들은 삼성물산에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매수하라고 요구했고, 삼성물산은 당시 일성신약 등에 주당 5만7234원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일성신약과 소액주주는 터무니 낮은 가격이라고 법원에 가격조정신청을 냈죠. 접수된 지 약 6년인 지난 14일 대법원은 소액주주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법원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주주들에게 제시된 주식매수가격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삼성물산은 일성신약 측에 약 309억원을 더 지급하고 소송한 소액주주들에게 다시 책정된 가격의 차익을 지급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의 인수합병으로 피해 보는 소액주주가 계속 나오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인수합병을 추진할 때 시가 합병배정이 아닌 공정가로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시가 합병의 경우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합병비율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회계법인 2곳에 의뢰해 공정가치로 합병합니다.
대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재도입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서 산 가격만큼 소액주주들 지분도 같은 가격에 사줄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죠. 물적 분할에도 소액주주들에게 매수청구권을 부여하면 회사 가치를 떨어뜨리는 물적 분할을 강행하기 어렵습니다. 유럽에서는 의무공개메수제를 법제화하고 있습니다.
소액주주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결이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비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