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연해서 몰랐던 것들 [친절한 쿡기자]

너무 당연해서 몰랐던 것들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2-04-20 05:56:02
영화 ‘복지식당’ 스틸컷

최근 배리어 프리 영화에 대해 취재를 했습니다. 처음엔 막연하게 우리 사회에 더 많은 배리어 프리 영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쓰려고 했습니다. 장애인 단체와 영화관 업계가 배리어 프리 영화 상영을 두고 오랜 기간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배리어 프리 영화를 상영하려면 제도적 기반과 제반 장비와 상영관이 필요한데 누가 그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논쟁의 핵심입니다. 현재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배리어 프리 영화를 ‘가치봄 영화’라는 이름으로 상영하고 있지만, 특정 기간 몇회차에 불과한 특별 상영입니다. 시·청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처럼 원하는 때 원하는 상영관에 가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서 볼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겐 마치 처음부터 있었다는 듯 너무 당연해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선택권이, 누군가에겐 아무리 애써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몰랐던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화관에 가면 각 상영관마다 장애인 좌석이 있습니다. 누구나 영화관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같은 영화를 보는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장애인 좌석이 비어있으면, 장애인들이 영화를 보러오지 않았구나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신체 일부분이 불편한 지체 장애와 시각 장애, 청각 장애 등 불편함의 종류와 그에 맞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건 몰랐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 배리어 프리 영화에 대해 물었더니, 일단 영화관까지 가는 어려움에 대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많은 영화가 배리어 프리 버전으로 제작되고 영화관이 언제든 장애인들이 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춰도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아니란 사실을 몰랐습니다.

몰랐던 건 또 있습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복지식당’(감독 정재익, 서태수)을 보고 중증 장애를 가졌지만, 경증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장애인들이 얼마나 단단하게 커뮤니티를 구성해 사는지, 그곳에도 명확한 권력 관계가 존재하는지 몰랐습니다. 극 중 주인공처럼 중증 장애를 가진 정재익 감독을 만나 인터뷰를 하려면 전동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영화와 달리 실제론 중증 장애인의 말을 얼마나 알아듣기 힘든지 몰랐습니다. 만나서 얘기하는 동안 내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서 들으면 더 원활히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모르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처음엔 장애인의 삶과 불편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알아가고 이해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아무리 알아가도 모르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앎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죠. 지금 비장애인이라고 눈 감고 귀를 막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거나 사고를 당하면 언제든 장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장애인이니까요. 비장애인들로 가득한 길거리와 지하철, 버스에 장애인들은 왜 잘 보이지 않는지부터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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