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역시 내가 아닌 다른 나.” 가수 이수정은 26일 발매하는 미니음반 수록곡 ‘거울’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는 그룹 러블리즈에서 베이비소울이라는 예명으로 7년 동안 활동했다. 다른 사람을 연기하는 것 같은 괴리감에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지난 20일 서울 성산동 울림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이수정은 “저도 모르게 저를 틀 안에 가둔 것 같다”고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수정이 속했던 러블리즈는 순수한 이미지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사랑 받았다. 발랄한 댄스곡에 깊은 슬픔을 묻어놓은 감성이 돋보였다. ‘안녕’ ‘아츄’ ‘데스티니’(Destiny) 등 히트곡도 많았다. 하지만 페르소나가 강해질수록 자아는 흔들렸다. 23세 청년에게 ‘러블리즈 베이비소울’과 ‘자연인 이수정’ 사이에 선을 긋기란 쉽지 않았다. 이수정은 “베이비소울이 가진 이미지에 갇힌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답답하기도 했다”고 했다. 흐릿한 공사 구분이 유발한 K팝 아이돌의 직업병이었다.
이수정이 신보 제목을 ‘마이 네임’(My Name)으로 지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베이비소울이라는 페르소나를 벗어 던지고 원래 가진 ‘내 이름’(마이 네임)을 되찾았다.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겠다는 의미다. 이수정은 “진짜 내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거울’ 속 “포장을 벗겨 꺼내줘”라는 노랫말로 토해낸다. 그는 이 곡 소개 글에서 “틀에 맞춰 살다 보니 나를 잃어버렸던 때가 있었다”며 “그런 혼란과 함께 이 터널이 지나면 희망과 기적이 있다는 메시지를 (노래에) 담았다”고 적었다.
“러블리즈 안에서 리더 역할을 맡아서 고민이 더 컸어요. 팀을 위한 선택과 저를 위한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대부분 전자를 택하곤 했어요. 제 목소리나 저 자신이 돋보일 기회를 고집했다가는 팀에 피해가 갈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렇게 저를 숨기며 살았는데, 솔로 음반을 만들면서 점점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주변에서도 더 좋아하세요. 제 생각을 이제 알겠다면서요.”
껍데기를 깨고 나온 이수정은 과감하고 새롭다. 그는 타이틀곡 ‘달을 걸어서’에서 예전의 여린 목소리를 날카롭게 벼려 들려준다. “아련한 감성을 주로 표현한 러블리즈 음악과 달리, 더 파워풀하고 강렬하며 내 안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음악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한 결과다. 이수정은 ‘달을 걸어서’를 포함해 음반에 실린 5곡 가사를 모두 직접 썼다. 그는 음악 안에 담은 이야기들을 “내가 품고 있는 세상”이라고 표현했다. 자기 경험과 감정을 풀어내서인지 부를 때 더 재밌고 몰입됐다며 미소 지었다.
그 중에서도 ‘달을 걸어서’ 후렴구 가사 “아름다운 이 밤 널 안고 춤 춰”는 이수정이 특히 좋아하는 구절이다. “인생에서 어두웠던 시간들이 지난 뒤 비로소 진짜 나를 찾게 되고 우리만의 축제가 열린다는 뜻”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수정은 이 곡에서 노래뿐 아니라 랩도 한다. 어려서부터 힙합 음악을 좋아해 “인터넷 카페 ‘랩사모’에서 플로우와 라임 등을 배운 경험”이 밑거름 됐다. 이수정은 “신곡 활동으로 나에 관한 편견을 깨고 싶다”며 “내 경험과 일상을 녹인, 깊이 있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 인생을 가사로 쓴다면, ‘봄’을 테마로 표현하고 싶어요. 이제야 봄이 온 거 같거든요. 나만의 봄을 만끽해도 된다는 허락을 저 자신에게 해주고 싶어요.”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