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호소해도 ‘참고 해봐요’” 지쳐가는 돌봄노동자

“성희롱 호소해도 ‘참고 해봐요’” 지쳐가는 돌봄노동자

장기요양요원 절반 넘게 언어·신체 위협 호소
피해 당해도 대다수 “참고 일했다”
“필수 인력 지원 정책 필요”

기사승인 2022-04-28 06:23:01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 “센터 복지사님한테 얘기했죠. 이 어르신 이래서 더 이상 못 하겠다고요. (알고 보니) 복지사님도 전에 그런 경험(성희롱 등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복지사님이 저한테 ‘선생님, 조금만 더 참고 해봐요’라고 하더라고요.”

# “빨래를 한 바구니에 담아놨길래 아드님 옷까지 돌렸어요. 사실 수급자 가족 빨래까지 제가 할 의무는 없습니다. (말을 했더니) 그분(수급자) 하는 얘기가 다른 선생님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다 해주셨다는 거에요.”

어르신 돌봄서비스를 맡고 있는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 장기요양요원 절반 이상이 지난 1년간 언어, 신체 부당행위를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근로 중단, 근로 시간 감소를 겪기도 했다. 장기요양요원이 사회 필수 인력인 만큼,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권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보건복지 이슈앤포커스 423호 ‘장기요양요원의 부당 처우 경험과 권익 보호를 위한 방안’을 지난 25일 발간했다. 장기요양요원은 요양기관에서 장기요양급여 인정자(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로, 혼자 일상생활이 어려운 자)를 대상으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을 말한다.

‘장기요양요원의 부당 처우 경험과 권익 보호를 위한 방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 고령화와 제도 대상자 확대로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지난 2020년 기준, 86만명에 달한다. 2008년(21만명)의 4배가 넘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장기요양요원 규모는 같은해 12월 기준 50만명에 이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장기요양요원 1000명을 대상으로 ‘장기요양요원 처우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를 온라인으로 벌인 결과, 노인요양시설 근무자 절반 이상이 비난·고함·욕설 등 언어적 부당행위를 당했다고 답했다. 정원 30명 미만 노인요양시설 종사자 54.5%, 정원 30명 이상인 노인요양시설 종사자 51.2%였다. 꼬집기·밀치기·주먹질 등 신체적 위협을 당했다는 답변도 절반을 넘었다.

성적 부당행위를 경험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원 30명 미만 노인요양시설 종사자 32.4%가 “성희롱 등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말했다. 방문형 서비스 종사자들은 규정 외 업무(35%)나 초과 업무 요구(34%)에 노출돼있었다. 사비로 수급자 물품을 구입해 줄 것을 요구받거나(13.9%), 수급자(가족)의 부당한 민원을 경험했다(10.9%)는 응답도 집계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기요양요원의 부당 처우 경험과 권익 보호를 위한 방안’

부당행위를 경험해도 대다수는 참고 넘겼다. 적극적 대응한 경우는 4명 중 1명 수준에 그쳤다. 지난 1년간 수급자(가족)로부터 부당행위를 당했을 때 이의 제기 및 도움 요청을 했는지 묻는 말에 “그냥 참고 일을 계속했다”는 답변은 종사자별로 방문형 서비스 61.2%, 주야간·단기보호 63.2%,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65.6%, 요양시설(30명 미만) 72.2%, 요양시설(30명 이상) 65.6%였다.

거리두기 강화로 방문형 서비스 종사자 19.8%가 근로 중단 또는 근로시간 감소를 경험했다. 이 가운데 55.1%는 무급 대기 조치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자발적 퇴사를 강요 받거나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한 종사자도 7.1%를 차지했다.

남궁은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서비스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2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요앙보호사는 여성이 대다수인데 남성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방문형 서비스에 나섰다가 성희롱 및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을 어떻게 모면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는 분도 있었다”면서 “또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이뤄지는 장소가 집이라는 사적 공간이다. CCTV 등 증거가 없어 입증하기 힘들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제도적으로 어떤 개선이 이뤄져야 할까. 수급자(가족) 대상 인권 교육 의무화와 중간관리자의 정기적인 수급자(가족) 방문 등 모니터링 강화가 대응책으로 제시됐다. 아울러 부당행위가 발생할 때 장기요양요원, 관리자, 시설장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월 60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자 지원 강화도 언급됐다.

지난 2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에 △장기요양요원 노동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제작 △수급자와 장기요양기관이 작성하는 계약서에 ‘요양보호사에게 폭언·폭행·성희롱 등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함’을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나선 곳도 있다.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에서는 지난달부터 전담 상담원 1명을 추가 채용, 장기요양요원 폭언·폭행·성희롱 피해 상담을 진행 중이다. 

남궁 부연구위원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이후로도 재현될 수 있다”면서 “이런 위기 상황에 대비해 필수노동자인 장기요양요원을 위한 선제적·실질적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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