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박탈, 기자해임, 발행된 지면 회수. 민주화 이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2022년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현직 대학언론인과 국회의원, 전문가 등이 모여 대학 내 언론 탄압을 고발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학언론인네트워크(대언넷)와 윤영덕·강득구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실은 29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대학 내 언론자유 실현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대언넷과 윤 의원실, 쿠키뉴스에서 공동 주관했다. 대학 언론인들과 김진표 민주당 의원, 무소속 양정숙 의원 등이 참석했다. 쿠키뉴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현직 대학 언론 당사자들이 나서 대학 언론 검열과 탄압 실태에 대해 증언했다. 최아현 가톨릭대학교 인권모임 가다 전 대표는 ‘검열 없이 붙을 수 없는 대자보와 간행물’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다는 지난 2020년 2학기 개강에 맞춰 ‘가톨릭대학교에 오신 성소수자/비성소수자 신입생들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현수막을 게시하려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반년 넘게 4번에 걸쳐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 허가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해 자체적으로 게시했으나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수거됐다.
최 전 대표는 “비단 가톨릭대학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며 “대학 대부분에 홍보물 게시 규정이 있고 해당 규정이 학생들의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어느 대학에서든 이와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학교 측의 탄압을 겪었던 숭대시보 사례도 소개됐다. 장범식 숭실대 총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00% 대면으로 수업을 전환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숭대시보는 취재를 거쳐 100% 대면 수업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도하려 했다. 숭대시보 주간 교수는 기사 작성을 막았다. 기자 전원이 해임됐다. 우여곡절 끝에 복직됐지만 학교의 압력과 편집권 침해는 더욱 심해졌다. 학교는 예산상의 이유를 들며 숭대시보를 조기 종간시켰다. 언론탄압에 맞서 학생들은 시위를 진행했고, 교육부 현장조사도 진행됐다. 학교 측은 숭대시보가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쓰려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현장조사 결과, 숭대시보 기자들이 작성하려 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다.
강석찬 전 숭대시보 편집국장은 “숭대시보는 일련의 사태에서도 정론직필 저널리즘을 실현하고자 했다”며 “직필하니 해임됐고, 정론을 보도하니 발행이 막혔다”고 말했다. 그는 “저널리즘에 대한 자부심과 실천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카르텔이 있다는 사실을 숭대시보가 보여줬다”며 “대학 언론을 옥죄고 있었던 구조적 매듭을 풀어야 한다. 대학 언론을 향한 언론 탄압과 유사한 문제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학 언론 자유가 탄압받아온 역사도 언급됐다. 지난 2019년 서강대학교 서강학보는 전면 백지로 발행됐다. 학교 측이 총장 관련 보도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2017년 청주대학교 청대신문은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는 김윤배 전 총장의 항소심 공판이 열렸다는 기사를 작성, 발행했다. 청주대는 발행된 신문을 학생들이 보지 못하도록 회수했다. 같은 해 충남대학교 충대신문은 총장 비선 개입 논란 기사를 주간 교수가 문제 삼아 발행이 취소됐다. 2016년 서울대학교 대학신문도 주간 교수의 과도한 간섭과 편집권 침해로 백지 발행됐다. 2012년 한국외국어대학교는 불합리한 이유로 외대학보의 지면 발행을 제한했다. 학생들이 항의 의미를 담아 자력으로 호외를 발행하자 편집장을 해임했다.
학내 언론 민주화를 도모할 해법은 없을까. 전·현직 대학언론인들은 학칙개정과 고등교육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태영 대학주보 부장기자는 “학생들이 발행하는 지면 역시 학칙에 저촉을 받는다. 92.4%의 대학이 간행물 발행·배표에 학교 측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고 한다”며 “지난 1980년대 독재정권에서 만들어진 학칙에서 유래했다”고 했다. 그는 “구시대적 학칙을 가지고 대학 본부와 학생들이 해묵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차종관 대언넷 집행위원장은 고등교육법 개정을 통한 제도 마련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대학역량진단평가 진단 지표에 학생 자치 및 대학 민주주의에 관한 정량·정성 평가 마련 △교육부 내 학생자치 주관 부서 신설 △학생자치기구 및 대학언론 법제화 △교육부의 대학 본부 감독 기능 강화 △이사회, 대학평의원회 등에 학생 참여 보장 △법정대학생협의회 마련 및 대학생 참여 거버넌스 설치 등이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대학 언론의 자유 실현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모색됐다. 김동운 쿠키뉴스 기자는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기자는 “같은 지역 내 타 학교의 소식을 공유하는 섹션을 공통으로 제작하고, 지역사회 더 나아가 지역 신문과의 연결망을 구축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재정 지원의 필요성도 나왔다. 박주현 대학알리 편집국장은 “대학 언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인력난”이라며 “정부나 지자체가 대학언론을 향한 재정적 지원을 펼쳐 대학언론인의 처우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세준 한국체육대학보 조교는 “등록금 동결은 학내 신문·방송사의 예산 삭감으로 돌아오고 있다. 학생기자의 활동비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 언론이 지금보다 예산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다면 건전한 공론장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을 대학 내 동등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지윤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원은 “교육부도 대학본부도 대학생을 대학 내 동등한 일원이자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학생의 자율성과 자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제도 개선도 강조됐다. 조선희 민주언론시민연합 미디어팀장은 “고등교육법은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보호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시대착오적 학칙으로 학생들이 헌법상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을 어떻게 개정하고 법제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좌장을 맡은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은 “군사정부 시절 학칙으로 21세기 대학생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학생들이 대학언론인네트워크를 만들고 토론회를 마련하고 제도적 대안을 고민해서 제안하는 걸 보면서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도 봤다. 정치인도 관심을 보이고 언론도 관심을 갖기에 오늘 토론회를 계기로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