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당선인 1호 공약인 ‘구글 정부’(디지털플랫폼정부)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새 정부는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플랫폼정부’를 비전으로 삼았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5가지 중점 추진과제를 마련했다.
과제 중 하나인 ‘국민 체감 선도 프로젝트’에는 실손보험 간편 청구가 담겼다. 실손보험 청구 시 가입자가 일일이 서류를 뗄 필요 없이 전산망을 통해 증빙서류를 보험사로 전송하는 내용이다. 의료기관·심평원·보험사 간 데이터를 연계하고 개방하면 된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새 정부가 먼저 시행해야 하는 과제 1위로 꼽혔다. 인수위원회는 지난달 국민 소통 플랫폼 ‘국민 생각함’을 통해 14개 생활밀착형 후보 과제의 우선 시행순위를 조사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총응답자 4323명 중 2003명(9.27%)의 선택을 받았다.
인수위는 민간 전문가와 논의를 거쳐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정책 구현 가능성을 판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국민의 수요를 확인한 만큼, 정책 실현에 필요한 세부 내용을 자세히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보험금 신청서와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 영수증 등 서류를 직접 제출해야 한다. 절차가 번거롭다 보니 실손보험금 청구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소비자와함께·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총응답자의 47.2%가 실손보험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30만원 이하 소액청구 건은 무려 95.2%를 기록했다.
가입자가 종이 서류를 사진으로 촬영한 후 앱이나 이메일로 청구하더라도 결국 보험사에서 수작업으로 전산 입력해야 한다. 연평균 9000만건에 이르는 실손보험 청구 중 76%가 종이 서류로 이뤄지고 있다.
업계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13년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주장했지만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관련 입법이 추진됐으나 끝내 무산됐다. 21대 국회에서는 고용진·김병욱·전재수·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 5개의 유사한 법안을 내놓았으나 이 또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보험 계약자가 요청하면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 전송에 응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금융위원회가 2015년 추진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또한 무산됐다.
국회의 법안 발의와 금융당국의 조치에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좌절되는 데에는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실손보험이 보험사와 가입자 간의 사적 계약이란 점을 들어 제3자인 의료기관에 보험금 지급을 위한 서류 전송을 법적 의무화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정부에서 할 건지 국회에 계류된 법안을 통과시킬지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빠져있다”면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업계에 얘기가 나온 건 아직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이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도 매번 했던 말만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게 빠졌다”면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