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봤나요, ‘그대가 조국’일지도 모른다는 걸 [쿡리뷰]

생각해봤나요, ‘그대가 조국’일지도 모른다는 걸 [쿡리뷰]

기사승인 2022-05-12 05:58:01
영화 ‘그대가 조국’ 포스터

집에 아무도 없다. 한 남자가 홀로 외출을 준비하고, 밥을 차려서 혼자 먹는다. 가족들은 통화만 나눌 뿐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는 설명한다. 그는 어쩌다 혼자가 되어 몇 년째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지. 그리고 묻는다. 그의 사연이 당신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믿는지.

‘그대가 조국’(감독 이승준)은 2019년 8월9일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이후 조국과 그의 가족, 주변인들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검찰 개혁을 완수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는 사라지고, 조국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조국을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은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재판에 증인으로 선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잘 안다고 믿는 이 이야기엔 알고 보면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둘이 아니다.

기존에 잘 다뤄지지 않았고 전달되지 않았던 조국 사태의 이면을 조명하는 영화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당시 기자회견을 자처한 것처럼, 조국 전 장관과 주변 인물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발언대이기도 하다. 특정한 의도를 갖고 사안에 접근하거나, 누군가를 옹호하고 신화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시각을 강요하거나, 감정을 과도하게 움직이려는 연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조국 전 장관의 일상과 인터뷰, 당시 사건 관계자와 기자들의 인터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럽게 이어져 다큐멘터리 자체로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꼼꼼하고 과감한 영화다.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고 대법원까지 간 재판 결과가 이미 나왔다. 주인공 반대편에 선 인물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현실을 분명하게 인지하면서도 그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간다. 거리를 둔 채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고, 그 과정에 존재하는 문제점과 사건에 영향을 받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다. 언뜻 과감해 보이는 문제 제기는 탄탄하게 쌓아올린 근거들로 설득력을 갖는다. 이는 왜 조국 사태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지, 왜 이 영화가 제작돼야 했는지를 입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 ‘그대가 조국’ 스틸컷

감독이 말한 것처럼 사건과 인물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주제와 메시지가 명확하다. 검찰과 언론, 정치인들이 어떤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 되새긴다. 의도치 않게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까이에서 지켜본다. 조국 전 장관을 만난 적도, 큰 인연도 없는 시민들이 사건에 휘말려 의도치 않게 소모되는 이야기로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다. 영화에서 지적하는 문제점들을 보고 있으면 검찰의 권한과 권력, 검찰개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3년도 지나지 않은 사건을 다룬 영화다. 당연히 관객들 각자 입장에 따라 감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수도, 누군가는 편파적인 영화라 욕할 수도, 누군가는 몰랐던 사실을 알고 입장을 바꿀 수도 있겠다. 영화가 담지 못한 이면 역시 존재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말과 표정, 이들이 겪은 일들은 분명한 사실로 기록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10년, 20년 후에 다시 꺼내 보면 그때는 어떤 시각으로 보일지, 어떤 역사로 남을지 궁금하게 한다.

지난해 초부터 기획을 시작해 10월부터 촬영한 비교적 빠르게 제작된 영화다. 시사회를 열고 DVD와 포토북을 제작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시작한 크라우드 펀딩은 세 시간 만에 목표 금액 5000만원을 채우고 12일 현재 23억원을 돌파했다. 2011년 영화 ‘달팽이의 별’로 아시아 최초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2020년 ‘부재의 기억’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최초로 단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이 연출했다.

오는 2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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