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시황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12일 오후 3시 기준 테라USD(UST)는 전날 대비 15% 떨어진 0.6038에 거래됐다. 루나는 전날보다 97% 하락한 0.3247달러를 기록했다.
테라(UST)는 코인 루나(LUNA)를 매입하거나 판매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고정하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유로 같은 화폐와 연동해 변동성을 줄인 가상화폐를 말한다. 스테이블코인의 가장 대표적인 코인은 테더(USDT)다. 1테더는 1달러의 가치를 가진다. 테더 발행사는 은행에 1달러를 예치하고 1테더를 발행한다. 은행에 맡긴 1달러가 보증금 역할을 하는 셈이다.
테라(UST)는 테더와 다르게 화폐가 아닌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가격 안정성을 유지한다. 테라(UST)를 팔면 1달러를 지급하는 게 아니라 1달러 상당의 루나를 지급하는 구조다. 1테라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보유자는 테라폼랩스에 테라를 매도해 1달러어치의 루나를 받아 간다. 시장에서 테라의 수요가 올라가면 가격도 올라가면서 1달러에 맞춰진다.
반대로 테라(UST)의 가격이 1달러를 넘기면 테라(UST)를 추가 발행해 가치를 떨어뜨린다. 미국이 통화 가치 유지를 위해 달러를 찍어내고 거둬들이는 것과 유사하다.
이번 사태는 테라(UST)와 루나 가격이 모두 내려가면서 발생했다. 동반 폭락으로 루나의 가치가 0에 수렴하게 되면 테라(UST)를 루나로 바꾼다 해도 가치가 순식간에 쪼그라들게 된다. 테라(UST) 매도세가 루나 매도로, 루나 매도 영향이 테라(UST) 매도로 ‘악순환’이 반복됐다. 더 큰 손해가 발생하기 전에 앞다퉈 파는 대규모 인출(뱅크런) 사태까지 이어졌다.
테라(UST)와 루나의 몰락은 또 다른 스테이블코인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박주혁 쟁글 글로벌 인텔리전스팀 매니저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불신이 다른 프로젝트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런칭한 트론의 USDD, 니어 프로토콜의 USN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동환 블리츠랩스 이사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주류 크립토 시장에서 기능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이 금융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이 카테고리 전반에 은행에 준하는 규제를 도입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미 재무부는 스테이블코인을 금융 안정성의 잠재적 위협 요소로 판단하고 규제 도입을 강조해왔다. 이번 사태가 규제 강화의 근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는 11일(현지 시각) 테라(UST) 폭락 사태로 인한 규제를 촉구했다.
미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를 은행으로 취급해 예금보험 등 같은 규제를 적용하는 안과 미국 국채나 중앙은행 지급준비금 등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그 액면가를 1:1로 보증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만드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김 이사는 “규제가 현실화하면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뿐만 아니라 테더(USDT)나 USDC같은 예치금 담보 기반의 스테이블코인도 어려워진다”면서 “특히 테더(USDT)의 경우 현재 예치금이 환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구성으로 짜여 있어 상당 규모의 충당 혹은 코인 소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법정 화폐와 연동된 테더(USDT) 또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테더 또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1테더를 언제든지 1달러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가상화폐 시가총액 순위 10위권에 들었던 루나가 깨지는 것을 보면서 스테이블코인을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넘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테더(USDT)의 위축 움직임은 이미 나오기 시작했다. 같은 시간 기준 코인마켓캡에서 테더(USDT)는 24시간보다 1.4% 떨어진 0.98달러에 판매됐다. 테더가 1달러 가치를 보존하지 못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테더가 붕괴할 때 이더리움 기반의 디파이 프로토콜이 타격을 많이 받게 된다. 그러면 전체적인 알트코인의 매도세가 늘어날 것”이라면서 “전체 코인의 가격이 빨르게 내려가면서 투자자 피해가 심화할 수 있다. 코인 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다”라고 주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이 타격을 받게 되면 크립토 전반에 일시적인 유동성 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코인 거래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비트코인 거래액의 80% 이상이 스테이블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통화 중 가장 비중이 높은 US달러는 12% 정도밖에 안 된다.
반면 테더(USDT) 붕괴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박주혁 매니저는 “테더와 USDC는 담보 비율이 1:1이기 때문에 테라(UST)처럼 하락할 것 같지는 않다”고 반박했다.
이번 사태가 가상화폐 시장이 제도화 되는 ‘성장통’이라고 업계는 평가했다.
김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에 은행에 준하는 규제를 세우면 당장은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결국 제도권에서 인정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사실 장기적으로 보면 호재다. 현재 기관 자금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2~3년 전처럼 코인 시장이 붕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박 매니저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위험 요인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추후 규제가 강화되면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그때는 투자자들이 더욱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가상화폐 산업은 더디게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테라와 루나의 급락으로 인해 탈중앙화가 옳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있다. 투자자 피해가 생기면서 무조건 좋은 건 아니라는 시그널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탈중앙 금융을 표방했던 이 산업 자체의 성장이 더뎌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희정 기자 sonhj122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