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협력업체 10곳 중 4곳은 원사업자로부터 납품단가를 전혀 올려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철강류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가격 부담을 하도급업체가 부담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실태 1차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최근 가격이 급등한 원자재를 주원료로 제품을 생산·납품하는 중소기업협동조합·전문건설협회 회원사를 대상으로 온라인·서면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대상 업체 2만여곳 가운데 401개 업체가 설문에 참여했다.
응답 업체의 42.4%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원사업자와 분담하지 않고 하도급 업체가 모두 떠안았다는 의미다. 특히 건설업종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납품단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1.2%로 높게 나타났다.
전 업종을 통틀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일부라도 납품단가에 반영됐다고 응답한 업체는 57.6%였다. 반영 비율은 10% 미만(24.7%)이 가장 많았고, 이어 10% 이상(20.7%), 50% 이상(12.2%), 전부 반영(6.2%) 등의 순이었다. 단가 조정은 수급 사업자의 조정 요청 또는 원사업자의 선제적 조정, 사전에 정한 요건에 따른 자동 반영 등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하도급법에 따르면 공급원가 변동이 있을 땐 수급사업자나 중소기업협동조합이 하도급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계약서에 관련 조항이 없어도 대금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협력업체가 54.6%였고 조합이 협상을 대행해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업체는 76.6%에 달했다.
조정을 신청해본 업체는 39.7%였다. 이 가운데 91.8%는 업체가 직접 요청을 요청했고, 8.2%는 조합을 통해 대행 협상을 신청했다.
조정을 신청하지 않은 업체들은 '거래단절 또는 경쟁사로 물량 전환 우려'(40.5%), '요청해도 원사업자가 거절할 것 같아서'(34.2%), '법적으로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지 몰라서'(19.0%), '이미 조정됐거나 조정 예정이라서'(13.1%) 등을 이유로 꼽았다.
협력업체의 요청에도 원사업자가 협의를 개시하지 않거나 거부한 경우도 48.8%에 달했다. 다만 조합을 통해 대행 협상을 신청한 경우 협의 개시 비율(69.3%)이 직접 신청한 경우(51.2%)보다 높았다.
하도급 계약서에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조항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2.1%였다. 조항이 없는 경우는 21.4%, 조정 불가 조항이 있는 경우는 11.5%였다.
공정위는 전담 대응팀을 신설해 납품단가 조정 실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현장 설명, 가이드북 발간 등 제도 홍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하도급 거래 서면 실태조사 결과 위법 혐의가 있는 업체에 대해서는 직권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서면실태조사는 원사업자와 1만개와 수급사업자 9만개 등 총 10만개 업체가 대상이다. 8월에는 납품단가 연동 내용을 담은 모범계약서를 제정·배포하고,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도 단가 조정실적을 반영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중소기업협동조합 등이 더 쉽게 납품단가 조정 대행 협상을 할 수 있도록 관련 요건과 절차 개선을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라며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여부를 검토하는 한편, 탄소중립 정책의 추진이 하도급 거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원·수급 사업자 간 상생협력 방안 등을 구체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