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논현동 나무엑터스 사옥에서 만난 김재경은 활력이 넘쳐 보였다. “한미 덕분에 제 마음도 극복됐어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얼굴에 망설임이나 고민의 흔적은 없었다. 그가 출연한 ‘어겐마’는 1회 5.8%로 시작해 최고 시청률 12%, 마지막 회 10.5%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김재경은 “드라마가 잘 된 것도 기쁘지만 현장에서 느낀 에너지가 좋아서 더욱더 행복했다”며 촬영 현장을 돌아봤다. 그에게 ‘어겐마’는 편안하고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이준기 선배님이 분위기 메이커셨어요. 카메라가 돌지 않아도 모든 스태프분들과 교감하고 재미난 분위기를 만들어주셨죠. 덕분에 현장이 매번 유쾌했어요. 연기도 더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연출을 맡으신 한철수 감독님도 정말 좋은 분이세요. 한미가 희우에게 느끼는 감정부터 여러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시면서 세세하게 도움을 주셨거든요. 이런 감독님을 만난 게 행운이다 싶을 정도예요.”
처음 김한미는 아버지에게 억눌려 세상에 불만이 가득했다. 김희우와 만난 후 공부를 시작했다. 나중엔 기자가 돼 정의구현에 힘쓴다. 김재경은 변화하고 성장하는 김한미를 표현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글로 표현된 김한미의 삶을 고스란히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한미는 꾸준히 성장하는 인물이에요. 한미 본연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성장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도록 고민을 거듭했어요. 한미는 방황하다 만난 희우에게 좋은 자극을 받은 뒤 기자라는 꿈이 생기고, 이를 이루고 나서 희우의 복수를 돕죠.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꿈을 위한 원동력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담아내려 했어요. 이 모든 행보가 한미의 인생이잖아요. 대본을 보자마자 매력에 이끌릴 수밖에 없었어요.”
김재경에게 힘을 준 건 대본이다. 대본을 읽을수록 걱정과 어려움을 덜었다. “대본만 따라가도 고민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어요.” 희미했던 서사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분명해졌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미지의 인생 같던 한미가 점차 가까워지는 걸 느꼈단다. ‘어겐마’ 촬영 전 느낀 불안감도 말끔히 해소됐다. 지난 4월 제작발표회에서 “김한미로 살고 김희우의 인생을 바라보면서 기분 좋은 자극을 받았다”고 언급한 그다. 그에게 작품의 의미를 묻자 곧장 “얻은 게 많은 작품”이란 답이 돌아왔다.
“사실 뜻대로 안 돼서 침체된 느낌을 받은 때가 있어요. 캐릭터를 이렇게 해석해서 표현하고 싶은데, 막상 해보면 딱 들어맞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매번 고민해도 해소되지 않았어요. 이젠 그렇지 않아요. 딱히 특별한 걸 하지 않았는데도 저 스스로 달라졌다는 걸 느꼈죠. 그동안 저를 무겁게 짓누르던 생각들이 사라진 걸 체감했어요. 제 연기를 보면서도 어긋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극복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저 역시도 한미처럼,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했을 뿐인데 모르는 새에 성장한 것 같아요.”
‘연기돌’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째다. “팀을 위해 잘 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컸다”고 과거를 회상하던 김재경은 “부담 탓에 연기를 즐기지는 못했다”고 쓰게 웃었다. 그런 김재경을 바꿔놓은 건 웹드라마 ‘고결한 그대’다. 처음으로 연기 맛을 알게 된 김재경은 ‘연기는 너만 잘 알면 되는 것’이라는 조달환의 조언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김재경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연기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다.
“예능에서 ‘오늘만 산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어요. 그래야 지금 이 순간의 저를 오롯이 돌아볼 수 있더라고요. 그런 ‘오늘’들이 쌓이면 연기할 때 내면에서 끌어낼 것들이 풍부해지겠죠? 연기가 제 자신을 더 단단히 만들어주는 셈이에요. 인간 김재경의 삶을 더 잘살게 해주는 거죠. 저는 앞으로 연기를 해나갈 시간이 길어요. 로맨틱 코미디, 사극, 액션, 시트콤… 하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아요. 많이 경험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연기를 더 알차게 해내고 싶어요.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재미를 더 찾아가 볼게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