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부과체계가 오는 9월 개편된다. 이번 개편의 핵심 방향은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하는 합리적이고 공평한 부과체계로의 전환’이다. 이에 따라 피부양자의 소득재산 인정기준을 강화하고, 재산보험료 비중을 줄이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제고 등을 위해 2017년 3월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마련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방안 시행을 위한 하위법령 개정안을 6월30일부터 7월20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9월1일부터 건강보험료 부과 기준이 개편돼 9월26일경 고지되는 9월분 건강보험료부터 변경 보험료가 적용된다.
지역가입자의 약 561만 세대(992만명)의 보험료가 월 평균 3만6000원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피부양자 및 직장가입자 등 86만 세대(112만명)의 보험료는 일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가입자 561만 세대, 보험료 월 평균 3만6000원 ↓
지역가입자 중 65%는 보험료가 24%(월 평균 3만6000원) 낮아져 부담이 가벼워질 것으로 보인다. 재산‧자동차 보험료가 축소되고 소득정률제를 도입함으로써 지역가입자 561만세대는 현재 15만원 내던 보험료를 9월부터 11만4000원만 내면 된다. 연간 2조4000억원의 보험료 부담이 줄어든다.
구체적으로 주택‧토지 보유 세대의 보험료 부담이 가벼워진다. 기본 재산공제액을 재산 구간별로 차등적용(500~1350만원)하던 현행 기준을 일괄 과표 5000만원(시가 1억2000만원 상당)으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지역가입자 37.1%가 재산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된다. 전체 지역가입자 중 재산보험료를 납부하는 세대는 60.8%에서 38.3%로 감소하게 됐다.
특히 자동차보험료도 대폭 축소된다. 자동차 보험료 부과 대상이 179만대에서 12만대로 감소될 전망이다. 9월부터 차량가액이 4000만원 미만인 자동차에 대해서는 건강보험료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1600cc 이상 차량과 1600cc 미만이지만 가액이 4000만원 이상 차량 등에 대해 자동차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 구매 당시 4000만원 이상이었지만 구매 이후 가치가 4000만원 미만으로 하락한 경우엔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득정률제도를 도입해 저소득층에게 최대 20% 더 많은 보험료가 산정되는 역진적인 문제도 개선한다. 현재는 지역가입자 소득을 97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점수를 매겨 점수당 금액을 곱해 소득보험료를 산정했다. 이를 ‘소득x보험료율’ 방식으로 바꿔 지역가입자 중 종합소득이 연간 3860만원(현재 38등급) 이하인 세대는 소득에 대한 보험료를 낮춘다.
공적연금소득과 일시적 근로에 따른 근로소득은 다른 소득과의 형평성을 맞출 방침이다. 해당 소득의 30%에만 보험료를 부과하던 것을 50%로 조정해 소득 전체에 대해 부과한다. 다만 국민연금, 공무원‧군인‧사학 등 공적연금은 본인 기여분 50%, 사용자 50% 부담인 점을 고려해 50%만 반영한다.
그러나 연금소득이 연 4100만원 이하인 대다수 연금소득자(지역 가입자의 95.8%)는 연금소득 관련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는다. 소득정률제 도입으로 인한 보험료 인하 효과가 연금소득 평가율 인상에 따른 보험료 상승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최저보험료도 일원화할 계획이다. 그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최저보험료는 서로 다르게 부과돼 왔다. 현재 연 소득 100만원 이하의 지역가입자 최저보험료가 1만4650원이었다면, 9월부터 연 소득 336만원 이하를 기준으로 1만9500원으로 인상된다.
이는 사회보험의 취지, 직장-지역가입자 간의 형평성, 제도의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적정 급여에 대한 적정 보험료라는 사회보험 가입자의 최소한의 부담을 규정한 것이다.
다만 최저보험료 인상으로 인해 보험료를 더 납부해야 하는 242만 세대(월 평균 약 4000원 인상)의 인상액을 한시적으로 감면하기로 했다.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담이 커질 수 있고, 최근 물가 상승 등 경제상황을 감안한 조치다. 이들은 2년간 기존 수준의 보험료만 내도록 인상액이 전액 감면되고, 그 후 2년간은 인상액의 절반만 부담하도록 경감된다.
직장가입자, 보수 외 고소득자 부과 확대
이번 개편안을 통해 2%의 직장가입자의 보험료가 오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직장가입자의 98%는 보험료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개편된 것은 ‘보수(월급) 외 소득’에 관한 부분이다. 그동안 직장가입자는 연간 보수 외 소득이 34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보험료를 부과했다. 이에 모든 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납부하는 지역가입자와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번 개편을 통해 보수 외 임대, 이자, 배당, 사업소득 등 연간 2000만원을 넘는 직장가입자가 보험료를 내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이는 보수 외 소득이 연 2000만원을 초과하는 45만명, 직장가입자의 약 2%는 월별 보험료가 평균 5만1000원 인상되는 수준이다.
다만 1만원 차이로 기준을 초과해 보험료가 과도하게 부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마련했다. 연 소득 2000만원은 공제하고 2000만원을 초과한 금액에 대해서만 추가 보험료를 부담하게 했다. 가령 직장가입자면서 보수 외 본인 명의의 부동산에서 임대소득이 2100만원 발생한 경우, 100만원에 대해서만 약 5820원의 보험료를 부과한다.
피부양자 자격조건 강화… 27만여명 지역가입자로 전환
부담 능력이 있는 피부양자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된다. 과세소득 합산 기준 연 소득 2000만원을 넘는 피부양자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에 따라 피부양자 27만3000명(피부양자의 1.5%)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돼 새로 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부담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원칙 하에 내린 조치다. 해외 주요 국가의 피부양률 사례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장가입자 1인당 피부양자 수가 높은 편이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직장가입자 1인당 피부양자 수는 1명이었다. 반면 독일은 0.28명, 대만은 0.49명이었다. 소득요건 역시 한국은 3400만원인 데 비해 독일은 약 720만원, 일본은 약 1278만원이었다.
다만 피부양자 역시 한시적 경감 조치가 적용된다.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피부양자의 보험료를 2026년 8월까지 일부 경감해 갑작스러운 보험료 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한다. 1년차엔 80%, 2년차엔 60%, 3년차 40%, 4년차 20%로, 단계적으로 경감률을 인하하는 식이다.
이에 따라 새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기존 피부양자는 월 평균 3만원의 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연차별로 14.9만원까지 단계적으로 부담수준이 조정된다.
반면 피부양자의 재산요건은 현행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당초 2017년 3월, 국회에서 부과체계 개편안을합의할 때 연 소득 1000만원 초과인 피부양자는 재산과표 3억6000만원을 초과할 경우 지역가입자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근 4년간 공시가격이 55.5% 상승하는 등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보험료부과제도개선위원회 등에서 제기됐다. 결국 재산요건은 현행 유지하기로 했다.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공정성 제고한 개편”
복지부는 이번 개편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실제 부담능력에 부합하는 적정 수준의 보험료를 납부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보험료 중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재산‧자동차에 대한 보험료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개편을 통해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가 크게 낮아지는 등 2022년 약 7000억원의 보험료 수입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연간 기준으로 환산 시 2조800억원 수준이다.
복지부는 “이번 개편안 시행은 2017년부터 예정돼 있어 그간 재정 추계 등 건강보험 재정 운영에 고려돼 왔다. 예측된 재정 범위 내에서 시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기일 복지부 제2차관은 “이번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물가 인상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이 덜어져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편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보험료가 인상되는 세대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이 함께 입법예고된다”고 밝히며 “앞으로 건강보험료가 보다 소득중심으로 개선돼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건보료 부담 커지는 거 아니냐” 우려도
이번 개편안에 피부양자 자격요건을 강화함으로써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 여당도 공개적으로 제동을 건 바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 “올해 9월부터 건보료 개편 2단계가 시행됨에 따라 국민들의 건보료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부양자 자격요건 완화, 자동차보험료 전면 폐지 등을 언급했다. 성 정책위의장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일용근로자 등 지역가입자의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며 “자동차 건보료 부과는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건보료 2단계 개편에서 지역가입자 기준과 피부양자 제외 기준이 강화되면 피부양자에서 탈락되고 지역가입자가 되는 국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연금소득만으로 생활하시는 고령 은퇴자에게는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2017년 3월 여야가 합의해서 만든 개편안을 가능한 존중해 시행하려 했다. 최근 물가상승을 반영해 최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한시적 경감조치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동차 건보료는 궁극적으로 폐지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자동차 보험료가 2898억원에서 280억원으로 줄어들어 폐지와 비슷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저보험료를 올림으로써 저소득층의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에 대해선 “생활이 어려운 취약계층의 경우 국가에서 의료비를 지원해주는 의료급여 대상자, 보험료 지원하는 차상위계층이 되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최저보험료 대상자는 이러한 취약계층보다 부담능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이 국민 반발이 크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법에 의해 합의한 개편안으로,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지역가입자의 경우 대부분 인하되고, 일부만 인상된다. 또 급격한 인상 완화를 위해 한시적 경감조치도 있어서 이 정도면 수용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한편 복지부는 입법예고 기간 중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후 개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의견이 있는 단체 또는 개인은 내달 20일까지 복지부 보험정책과로 의견을 제출하면 된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