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6월30일. 한적한 대로변과 달리 용산구 동자동 빨간 벽돌 건물 앞에는 사람이 모였다. 돌계단 위에 쪼그려 앉은 이는 모두 쪽방 거주민. 지붕 아래 있어도 들이치는 비 탓에 거리로 나온 주민들의 옷이 금새 축축해졌다. “덥고 갑갑해서 도저히 방 안에 있을 수가 없어. 숨이 안 쉬어져. 차라리 길바닥이 시원해” 벽돌집 4층에 사는 박동윤(가명·66)씨가 나지막히 말했다. 젖은 셔츠 소매가 박씨 팔뚝에 달라붙었다.
박씨가 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창이 없다. 이날 서울 평균 기온은 25.1도. 가파른 계단을 타고 간 박씨 방 온도는 29도까지 치솟았다. 습도는 75%였다. 손바닥만 한 선풍기가 비틀거리며 뜨거운 바람을 뱉어냈다. “사계절 내내 공기가 이렇다고. 밖이 보이는 창만 있어도 내려갈 필요가 없지” 무거운 공기에 박씨 한숨이 섞였다.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장맛비가 내렸고, 박씨는 돌계단 위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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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창이 있으면 어떨까요’ 질문을 들은 김정임(가명·여·68)씨가 손끝을 펴 방 안 깊숙이 박힌 벽을 가리켰다. “이거야. 이게 창이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가장 어두운 곳에 김씨의 창이 있었다. “바람이고 벌레고 냄새고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게 여기로 들어와. 그래서 내가 막아놨어” 멋쩍게 웃던 김씨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볕이 따갑게 내리쬐던 6월21일 오후 1시. 바깥과 달리 김씨의 쪽방은 컴컴해 조도계가 작동하지 않았다. 형광등 켜고 잰 조도는 103룩스(㏓), 몸을 반대쪽으로 돌리면 조도계 숫자는 이내 두 자릿수로 떨어졌다. 비상계단이나 창고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창만 34개 달린 경기 광주시 한 고급주택. 이곳 3층 거실에서 관측한 조도 1만9820룩스와 비교하면 김씨는 너무나 미약한 빛 아래 살고 있었다. “창이 1개 있지만, 결국 없는 거지 뭐” 빛까지 빨아들이는 4.95㎡(1.5평)의 블랙홀에서 김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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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생활을 하던 구영석(가명·50)씨. 거리에서 자던 그가 가진 것이라곤 파랗고 넓은 하늘뿐이었다. 구씨는 어렵게 노숙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역 근처 고시원에 들어갔다. 더 이상 비와 눈을 맞진 않지만, 그의 하늘은 0.19㎡로 작아졌다. “창을 열면 옆집 벽밖에 안 보여요” 구씨가 손을 펼쳐 들고 설명했다.
“창문 크기가 손바닥 두 개 정도예요. 좁고 어두운 곳에 있으니까 사람이 금방 우울해지거든요. 바깥 풍경이라도 보고 싶은데 벽만 보이니까 더 답답하죠. 굳이 창을 열어놓고 거기 벽이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싫어서 닫고 살았어요” 말을 하던 구씨가 허탈하게 웃었다. 고시원과 옆집의 건물 간 이격거리는 고작 1m였다.
현재는 용산구 갈월동 고시원으로 옮긴 구씨. 창 면적은 0.36㎡로 늘어났지만, 이것을 통해 보는 것은 여전히 회색 벽이다. 같은 구 내 한 고급 주택의 창 면적은 무려 159.48㎡. 그곳에선 청량한 하늘과 반짝이는 한강이 동시에 펼쳐졌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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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원룸들 창이 비슷하죠. 환기 어렵고, 단열도 안 되고요. 대학가에서 20대들이 살만한 좋은 집은 거의 없잖아요” 청춘이라고 모든 걸 견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특히 추위는 참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란 걸 조승호(가명·26)씨는 자취하고 난 뒤 깨달았다. “한겨울에는 창을 통해서 냉기가 들이닥치거든요. 근데 방이 좁아서 침대를 멀리 둘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창과 침대 사이에 책장을 놓고 살아요” 16.5㎡(5평), 월세 35만원. 많은 걸 포기했지만, 내야 할 돈은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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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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