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윤 대통령은 ‘과학방역’을 통해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해왔다. 다만 의료현장에서는 이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방역당국에 대한 국민 신뢰도 역시 낮다.
과학→자율→표적… 100일 동안 3번 명칭 변경
윤석열 대통령이 당초 슬로건으로 내세운 것은 ‘과학방역’이었다. 윤 대통령은 문 정부 방역정책을 ‘정치방역’으로 규정하고 낮은 방역 정책 신뢰도를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 정부 흔적도 지웠다. 문 정부에서 자문기구 역할을 하던 ‘일상회복 복지위원회’를 폐지했다. 전문가와 현장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민간 전문가만 참여한 ‘국가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회’를 설치했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 보다는 주요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해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첫 과학방역 결과물을 두고 논란이 이어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유행이 다시 거세지는 상황에서 당국이 제시한 대안이 ‘자율방역’인 탓이다.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은 “통제 중심의 국가 주도의 방역은 지속 가능하지 못하고 우리가 지향할 목표도 아니다”라며 국민들에게 자발적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했다.
이를 두고 ‘각자도생 방역’ 이라는 비판이 따라붙었다. 의무격리 일수는 유지하면서 확진자와 격리자에 대한 정부 지원은 축소됐다. 정부는 지난달 11일부터 코로나19 격리 관련 재정지원을 대폭 줄였다. 생활지원금을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에만 지원하고, 유급휴가비도 30인 이하의 중소기업에만 지원하기로 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또다른 방역 기조를 제시했다. 요양시설 등 확진자가 많이 나오는 곳을 집중 관리한다는 뜻의 ‘표적방역’이다. 다만 이전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방역당국도 정례브리핑에서 “표적방역은 그동안 해 온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윤 정부의 방역 메시지가 흔들리자 국민 신뢰도도 저조하다. 16일 한국리서치가 KBS 의뢰로 지난 12~14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에게 코로나19 방역 평가를 조사한 결과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8.2%에 달했다. ‘잘하고 있다’는 38.1%로 부정평가와 20.1%p 차이가 났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문가들 “알맹이 없는 과학방역… 지원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전 정부 방역정책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과학방역이라는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확진자·격리자 지원 강화 대책이 동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윤석열 정부의 방역은 과학방역이라는 그럴싸한 구호에 못 미친다”며 “지난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이름만 바꿨지 전 정부 기조를 그대로 끌고 가고 있다. 차라리 문 정부처럼 자화자찬이라도 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시스템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며 “위중증‧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확진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없고 사후약방문식 대응만 한다”고 혹평했다.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도 “문 정부와 달라진 게 있나”라고 반문하며 “뚜껑을 열어보니 알맹이가 없다. 결국 과학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정부 방역을 정치적으로 공격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서 감염 위험을 자발적으로 줄여나가는 자율방역 기조는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면서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격리 시 소득 상실을 보전해주거나 돌봄 공백을 메꾸는 제도가 있어야 확진자가 줄어들 수 있다. 말은 자율이라면서 지원은 줄이면 결국 각자도생하라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역시 “국가가 역할을 하지 않고 방치하는 정책만 계속 펼치고 있다”면서 “개인이 알아서 조심히 하라는데, 재정 지원이 없으니 국가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전 정책국장은 “특히 코로나19 환자 치료비는 국가가 전액 지원해야 한다”며 “수천만원씩 되는 치료비가 부담돼 병원에 가지 않고 임종을 맞는 분들이 많다. 정부는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