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두경부암, 여성 8배… 예방 대책은 ‘반쪽’ 

남성 두경부암, 여성 8배… 예방 대책은 ‘반쪽’ 

기사승인 2022-08-23 16:33:55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최한 HPV예방대책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의학계 전문가들이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한성주 기자

남성의 두경부암 예방을 위해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을 적극적으로 차단할 정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최한 HPV예방대책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의학계 전문가들은 “HPV감염으로 인한 질병 부담이 적지 않다”며 체계적인 감염 예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HPV는 여성에서 자궁경부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졌다. 이에 우리나라는 앞서 2016년부터 만 12세 여성을 대상으로 HPV예방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시켰다. 지난 정부에서는 접종을 지원하는 대상을 만 13~17세 여성,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 등으로 확대했다.

HPV는 남성에서도 생식기암, 두경부암 등을 일으키는 원인인자로 꼽힌다. 성관계를 매개로 감염되는 HPV의 특성을 고려하면, 남성과 여성 모두가 접종을 했어야 백신의 예방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남성은 여전히 HPV예방백신 지원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탓에 산부인과, 비뇨의학과 등 의료계에서는 여성만을 지원 대상으로 하는 HPV예방백신 NIP를 ‘반쪽짜리 정책’이라고 비판해 왔다.

이세영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이비인후학과교실 교수는 두경부암의 예방에 관심을 촉구했다.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암은 예방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하지만 예방 가능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암은 가능한 수단을 최대한 동원해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경부는 뇌 아래에서 가슴 윗부분 사이를 의미한다. 입, 코, 목, 구체적으로는 음식물이 넘어가는 인두와 호흡을 하는 후두 등의 기관이 이 부위에 위치한다. 두경부에 발생하는 암을 포괄적으로 두경부암으로 지칭한다. 전 세계적으로 두경부암 환자는 연간 90만명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되며, 암이 가장 많이 발생한 기관은 구강, 인두, 후두로 파악됐다.

이 교수에 따르면 두경부암의 위험에 가장 노출되어 있는 이들은 ‘가난한 남성 노인’이다. 우선, 두경부암은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압도적으로 많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연간 약 5600명의 환자가 발견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약 4300명은 남성이다. 또한 저소득층이 잦은 음주와 흡연을 하기 때문에 발병 위험이 높고, 주로 50대~60대에서 발병한다.

두경부암의 요인은 3가지로 요약된다.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인 △유전,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인 △흡연과 음주 △HPV 감염 등이다. 특히 이 가운데 HPV는 방치해서는 안될 요인으로 강조되는데, 인두암의 80% 이상, 구강암은 50% 이상이 HPV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HPV는 앞서 2007년도에 두경부암의 발암물질로 인정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계는 남성의 HPV예방백신 접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HPV예방백신은 전체 인구의 HPV 집단면역 효과가 증진하는 것은 물론, 두경부암을 비롯한 남성HPV 질환을 예방할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일생 동안 성접촉 파트너 수가 많고, 흡연량과 음주량이 많다. 게다가 여성보다 남성이 자연적인 항체 형성이 저조하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상태에서 HPV에 노출 시 여성은 70%, 남성은 30%의 항체 형성률을 보인다. 참고로 백신을 접종하면 여성과 남성 모두 100%의 항체 형성률이 나타난다.

HPV 예방 정책이 여성 건강에 집중된 시야를 확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여성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배상락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비뇨의학교실 교수는 “여성의 암, 여성의 건강권이 중요한 이슈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국내 시류인데, HPV는 성행위로 전파되기 때문에 여성 한쪽의 감염을 예방한다고 완전한 해결을 보기는 어렵다”며 “중성접종 즉, 남성의 접종을 병행해 전수에 가까운 접종을 실시해야 여성의 건강권도 진정으로 증진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성접촉 연령대에 대한 편견도 해소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정선화 두번째봄 산부인과 원장은 “HPV예방백신을 접종할 수 있는 연령은 여성이 만 45세까지, 남성이 만 26세까지”라며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고 이상이 발견된 경우, 45세 이후, 50대 초반에서도 백신접종에 대한 수요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청소년에 대한 사후피임약 처방 사례가 적지 않다”며 “10대 환자들을 대상으로 피임 교육과 HPV예방 교육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막상 접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일부 연령대의 여성에게만 이뤄지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정유석 국립암센터 교수는 “문화적 변화와 성생활의 변화가 HPV로 발생하는 암의 종류 및 유병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두경부는 숨을 쉬고, 먹고, 말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관”이라며 “치료 후에도 이런 기능에 타격이 남아 예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과 비교하면 남성에게서 8.4배 많이 발생하는 암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HPV예방백신은 남성의 면역학적인 취약성을 보완해줄 중요한 수단”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HPV예방백신의 NIP 혜택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권근용 질병관리청 예방접종관리과장은 “남아 접종은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라며 “특히 새정부의 국정과제에 영유아 로타바이러스 백신, 남아 HPV예방백신, 어르신 대상포진 백신 등 3가지 NIP 확대 목표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아 대상 확대 시 연간 190억원 정도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비용효과성을 고려해 다양한 백신 중 어떤 백신을 선정할지 검토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정부 예산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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