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제빵기사의 눈물 젖은 빵 [쿠키청년기자단]

청년 제빵기사의 눈물 젖은 빵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2-08-31 06:01:02
마무리 공정 작업에 들어간 청년 제빵기사 송씨. 
제빵기사들 사이에서 도는 웃지 못할 농담이 하나 있다. ‘우리의 행복을 팔아서 빵으로 만든다’는 얘기다. 달콤한 빵 속에는 제빵기사의 짠 눈물이 담겼다. 이들이 겪어온 부당한 노동 처우는 지난 2017년 공론화됐다. SPC그룹 산하 프랜차이즈인 파리바게뜨에서 제빵기사를 불법 파견했다는 점이 논란이 됐다. 그 후로 약 5년이 지났지만, 해결된 것은 없다. 노사갈등은 오히려 격해졌다. 지난 3월부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소속 제빵기사들은 차례로 단식에 돌입했다. 8월에는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제해결을 촉구하며 오체투지에 나섰다. SPC그룹을 중심으로 대두된 제빵기사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청년 제빵기사들은 어떤 시선으로 사태를 보고 있을까. 대기업 소속 20대 제빵기사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흡한 교육

“회사는 신입 제빵기사에게 시간을 주지 않아요.” 입사 4개월 차에 접어든 스물세 살의 제빵기사 박수지(가명)씨. 박씨가 받은 신입 교육은 이틀간의 인수인계가 전부였다. 상사들의 업무량은 버거울 정도로 많았다. 박씨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줄 시간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메모를 해가며 회사 업무 흐름을 무작정 암기했다는 박씨. 갓 입사했을 때와 비교해 현재 그는 업무에 조금 능숙해졌지만, 체계적인 교육이 있었다면 적응이 빨랐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1년간 오븐 담당으로 근무하다 지난 7월 퇴사한 송지윤(가명)씨의 상황도 비슷했다.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거둔 송씨는 동기들보다 일찍 제빵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전쟁통 같은 근무지에선 어리바리한 신입에 불과했다. “모두가 과중한 업무량에 허덕이다 보니 신입 직원의 실수에 너그러울 수 없는 분위기예요. 인력은 언제나 모자라고, 제빵은 사소한 공정 이슈에 제품 출하 문제가 생기기도 하거든요. 다들 예민하고 지쳐있죠.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질문을 하는 건 사실 당연한데 상사들은 ‘학교에서 이런 것도 안 가르쳐주느냐’면서 핀잔만 주곤 했어요.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송씨가 말했다.

보장 없는 휴식

베이커리 업계 대목은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연말 내내 송씨는 새벽 2시까지 일하고 다섯 시간 후인 오전 7시에 정시 출근했다. 주문량이 쏟아져 모든 제빵기사가 잠잘 새도 없이 일해야 했다. 하지만 인력 충원은 없었다. 터무니없는 업무량에도 충원해주지 않는 본사가 야속했던 송씨. 그는 현행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제빵기사들의 현실을 털어놨다. “일하기 전부터 알고는 있었어요. 각오도 했고요. 하지만 현실은 짐작을 넘어섰죠. 무리한 노동 시간과 강도를 제빵기사들이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어요. 이 와중에 주 52시간제는 적용해야 했기 때문에, 2배의 야간 수당이 아닌 1.5배 초과 수당으로만 돈을 받았어요. 이중으로 억울했어요. 선배들도 똑같이 힘들어하지만, 이건 이쪽 업계의 당연한 생리가 되어버려서 선뜻 이의제기 하기도 어려워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박씨는 아직 크리스마스 시즌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두려운 경험담은 충분히 접했다. “제 친구도 제빵기사예요. 그 친구가 다니는 지점은 주문량이나 매출이 높은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성수기에 각 제빵사에게 할당되는 업무량이 다른 지점에 비해 많아요. 인력은 그대로고요. 동시에 정부에서 지정한 주 52시간을 준수해야 하고요. 시간이 모자라니까 몇몇 직원은 점심시간을 반납하고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말이 자발이죠. 직원들이 휴식 시간을 반납하면서까지 노동을 해야만 업무가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잖아요”

줄어드는 희망, 늘어나는 회의

빵을 만들며 행복을 느꼈다는 송씨. 누구보다 자기 일을 사랑하지만, 이 업계를 보며 든 회의감은 쉽게 떨치지 못했다. “제빵업계에 종사하는 사회초년생들은 대부분 최저시급도 안 되는 수당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요. 수습 기간라는 명목하에 열정페이를 지급하는 동네 점포나 개인 기업도 많고요. SPC그룹에 노사갈등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제빵기사를 준비하는 많은 학생이 파리바게뜨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그런 거예요. 어차피 비슷하면 대기업이 낫다는 거죠. 또 사업 규모도 그렇지만, 국내 제빵 트렌드를 주도하는 대기업의 이점은 확실히 떨쳐내기 어렵거든요. 대체가 불가능한 대기업 중심의 제빵업계 구조도 큰 문제이지 않을까요”

박씨의 고민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곳도 비슷하겠지만 특히 이 업계가 문제를 제기를 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고용주의 보복이 두렵기도 해요. 하지만 제일 큰 요인은 문제의식조차 없는 일터의 분위기입니다. 상사들은 이러한 노동 처우가 문제라고 생각지 않아요. 그러니 결국에는 목소리를 낸 사람이 자기 생각을 검열하며 눈치를 보는 결말이죠. 제빵기사들이 안전한 환경과 적정한 임금을 요구할 수 있는 문화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황은진 쿠키청년기자 rosenwhite@naver.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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