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군 부대 발사 대포 소리 들리지 않자 시민 항의

용산 군 부대 발사 대포 소리 들리지 않자 시민 항의

[근대뉴스] 용산 주둔 일제 육군연대 매일 낮 12시 오포 발사
국제사회가 군비제한 의결하자 일제 '오포' 예산 삭감

기사승인 2022-09-05 09:14:49
[현대문으로 읽는 근대뉴스] 

1922년 8월 16일

매일 낮 12시 정각 경성의 하늘에 울려 퍼지던 오포(午砲)는 원래 용산에 있는 육군 연대에서 지난 14일까지 맡아 운용해 왔다. 그러던 것을 경성부에서 인계하여 15일부터 오포를 놓게 됐다.

이에 따라 당분간 육군연대 포수가 경성부 소속 포수에게 오포 발사 방법 등을 전수할 예정이다. 경성부는 오포 발사에 따른 일일 화약 값 4원과 포수 2명 비용 등 연 2000원에 이르는 운영비를 감당하게 된다.

경성부는 또 육군연대와 임시협의회를 구성, 기존 사용하던 오포 기구인 대포와 시계의 이관을 협의한다. 육군연대는 구식 대포 기부 의사는 밝혔으나 시계는 군에서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냄에 따라 경성부가 1000원 여의 예산을 들여 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출전 동아일보)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뒤 일본 육군이 용산에 주둔했다. 한 때 그 용산 주둔 연대에서 매일 낮 12시 오포를 발사했다. 우리보다 30분 빠른 일본 시각 기준으로 오포를 발사하다 보니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사진은 일제가 발행한 엽서이다.  
[해설]

딱 100년 전 경성 사람들은 지금의 서울 용산 효창공원에서 울리는 대포(午砲) 소리를 듣고 낮 12시임을 알았다. 시계가 귀하던 시절이라 오포는 점심시간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우리가 학창 시절 배웠던 나도향 소설 ‘벙어리 삼룡이’ 첫 문장은 남대문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보면 높은 봉우리 하나가 있는데 그 봉우리가 연화봉이라고 표현한다. 그 연화봉 쪽에서 오포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벙어리 삼룡이’의 무대는 연화봉 아래 과수나 채소를 일구고 사는 유족한 중늙이 집을 배경으로 한다. 오포는 연화봉 정상쯤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청파동 청파초등학교와 배문고등학교 사이쯤일 것이다.

나도향(1902~1926)이 그 연화봉 아래 청엽정(청파동의 일본식 표기) 사람이었다. 그러니 오포 소리의 추억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1908년 4월 1일 당시 일본통감부는 ‘호포위수조령’에 의한 ‘오정포(午正砲)’를 용산 연병장에서 포 삼각대에 장착하고 발사했다. 그런데 남쪽을 향해 발사하다 보니 북쪽 30만 경성 시민에게 잘 들리지 않았다.

이에 일제는 1912년 한양공원(현 서울 회현동 남산3호 터널 위)으로 이전하여 발사하다가 1920년 서울 효창원(효창공원)에 오포대를 설치하고 발사했다. 육군연대가 그 관리자였다.

이러던 것을 1922년 8월 경성부로 이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군비절감’이다. 국제사회는 1921년 11월 워싱턴회의에서 군비제한 조약을 체결했다. 일제는 그 영향으로 용산 효창원에서 발사하던 오포비용 절감에 까지 이른 것이다.

경성부 주관 효창원 오포는 1924년 ‘모터사이렌’ 일본 오사카에서 수입, 경성 남대문소방서 철탑에 설치하고 기차 고동으로 대신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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