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전 검사의 ‘미투’ 사건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 변호를 맡은 김재련 변호사가 ‘여가부(여성가족부)’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 여러 논의가 나오면서다.
앞서 여가부는 지난 7월 자체적으로 실시하던 청년 성평등 문화추진단 ‘버터나이프크루’ 사업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사업성이 없다’는 지적 한 마디에 중단했다. 김 변호사는 해당 사업에 대한 취지를 고려하지 않고 여가부 폐지의 논거로써 비판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6일 쿠키뉴스에 정치권이 젠더 갈등을 전략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가져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여가부가 기능 중심이 아닌 대상 중심으로 활동하기에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자기소개를 한다면
▶올해로 변호사를 한 지 햇수로 21년 차가 된 것 같다. 중간에 2년 정도 여가부에서 권익증진국장으로 활동했다. 권익증진국장은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관련 업무와 ‘위안부’ 피해자 지원, 폭력 예방 교육 등을 총괄하는 주무국의 국장이다. 그 이외에는 변호사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주로 관심 있게 처리하는 사건들은 성폭력과 가정폭력, 아동학대, 결혼이주여성 인권침해와 관련된 사건이다.
-성평등과 인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다니면서 헌법 공부를 많이 했다. 그때 인권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등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배웠는데, 인간이 존중받아야 할 주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게 좋았다. 실제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때 처음 근무하던 변호사 사무실도 인권과 관련된 사건을 주로 맡는 곳이었고 그러다 보니 해당 사건들을 많이 처리하게 됐다. 사건을 통해 문제의식을 더 명확히 지니게 됐다. ‘왜 법이 제대로 돼 있는데 피해자들이 피해를 받고 있지?’ ‘왜 피해자들은 제도를 적극 활용하지 못했지?’ 이런 생각이 선명해졌다. 그래서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에 대한 모집 공고가 났을 때 이런 문제의식을 정책적으로 잘 보완하는 데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일을 했다. 특히 폭력 피해자들에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게 생각이 난다. 성폭력에 있어서는 ‘허락받지 않았을 땐 멈춰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 가정폭력과 관련해서는 ‘관심을 둬달라’는 주제를 담은 영상을 제작하는 등 활동을 했는데 정부 차원에서의 적극 지지를 받았고 시민의 반응도 괜찮았다. 이런 활동이 인권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인 것 같다.
-‘여가부 폐지’에 대한 생각을 전달한다면
▶여가부의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나 역할은 사라지지 않도록 더 강화되고 촘촘하게 국민에게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가부가 하는 업무는 여성, 가족, 청소년, 폭력 피해자에 대한 업무다. 여성에 한정되는 업무가 아니다. 다른 보통의 부처는 고용, 노동, 보건, 의료 등 기능 중심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여가부는 기능이 아니라 대상 중심이다. 여성이라는 대상, 폭력 피해자라는 대상, ‘위안부’ 피해자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하는 부처라서 사실상 여가부가 하는 업무는 다른 부처와 갈등 관계가 생길 수도 있고 일반 국민은 여가부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젠더 갈등에 일조한다’ 비판할 수 있다. 사실 여가부가 우리 사회에서의 평등을 위해 법적으로, 정책적으로 굉장히 적극적인 노력을 많이 해 온 부처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국가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인지하게 하고 피해자에게 공감하게 하는 등 성평등 발전과정에서 그 어느 부처보다도 여가부의 공로가 컸다고 생각한다. 또 여가부는 산하기관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개별 시민단체 등과 거버넌스를 구성해 현장에서 폭력 피해자들과 상담하고, 현장에서 정부 정책이 잘 집행돼 갈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여가부는 모범적인 (부처) 모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명칭이 여성하고 가족만 대변하는 부처로 보일 수 있으니 이름을 개편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처럼 여가부를 폐지하는 방향은 21세기 국제사회 흐름에 비춰보더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폭력 피해자가 여성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아동, 청소년, 남성 피해자들도 있다. 여가부는 취약한 위치에 있는 피해자를 돕는, 정책적 대상자를 지원하며 구조적 불평등에 직면해있는 국민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존속되고 확대돼야 한다.
-‘버터나이프크루’ 사업 중단에 관한 입장은
▶이름 자체도 생소하고 솔직히 저도 이 사업을 몰랐다. 이름이 너무 생경한 것 같다. 어쨌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문화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이라고 하던데 그런 프로그램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좋다. 다만 그런 사업이면 운영하는 사람들 정도만 해당 사업을 아는 경우가 많고 또 대중에게 와 닿지 않다 보니 비판하는 태도에선 ‘이게 뭐 필요하냐’ 등 소규모 동호회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는 이 사업의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고 그런 걸 통해서 성평등 인식 확산을 조금씩 확대한다고 하면 국가에 해가 되는 게 아니므로 여가부 존폐에 대한 논거 중 하나로 들이대는 것 자체가 과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치권에서 ‘페미니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지
▶제가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은 전략적으로는 약간 실패한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하나로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게 휴머니즘의 목적이라고 하면 페미니즘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작은 길 중의 하나다. 과거 여성이 남성보다 차별받아서 그 차별에 맞서는 목소리를 내는 게 페미니즘이었다.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출발은 이러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성과 연대해야 하는데도 남성을 혐오하고 깎아내리다 보니 남성들도 ‘왜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느냐’ ‘여성은 이기적이다’라고 하게 된다. 여성에게 공감하려던 남성들조차도 페미니즘의 구분화 때문에 등을 돌린다. 이게 전략적 실패라고 본다. 남자를 적으로 규정해서 싸울 게 아니라 휴머니즘 관점에서 평등한 인간이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존엄의 주체인 모두가 문제를 제기하고 차별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내도록 함께 갔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성평등을 이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성평등의 완전한 수준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사회 구조적으로 특정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배제 받지 않도록 법이나 제도를 정비하고,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반 시민이 갖는 등 성평등이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기업 생산성 향상에도 그렇고 가족 내에서의 갈등, 육아 문제 등이 모두 성평등과 관련한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우리 법률이나 제도에서는 남녀를 차별하는 규정은 없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 현실을 바라보게 되면 구조적으로 성평등하지는 않다. 여성이 아이를 출산한 후 육아할 때 남성이 적극 양육하지 않으면 경력이 유지되지 않는 일 등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성평등에서는 양육과 교육에 관한 부분을 국가가 적극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빨리 공적 돌봄 안으로 들어와야 여성과 남성 사이의 갈등이 줄어든다. 우리가 결혼할 때 ‘누가 애 봐 줘?’라는 질문부터 받는데 이 질문은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으면 애를 못 낳는다는 의미다. 여성이 경력 단절되지 않기 위해, 남성에게만 과도한 책임이 씌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가 양육에 대한 부분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자연스레 올라올 것이다.
-김재련에게 정치란?
▶모든 인간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죽는 순간까지 존엄한 삶을 유지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다. 어느 성별, 어느 국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에 상관없이 자기가 처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사는 게 저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라고 하는 건 국민, 시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면서 살기 위해 해결해야 할 부분들을 제거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 주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태풍이 불 때 자기 존엄을 지킬 수 있는 1차 공간인 주거지가 물난리로 망가졌을 때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 보고 ‘수로를 만들어라’고 개인에게 의무를 부여할 수는 없지 않나. 사람들이 어렵게 마련한 그 공간만이라도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국가가 인프라를 마련하고 예견할 수 있는 자연재해에 대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치다. 매일 지지율 싸움하고 무슨 당이 이기는지 확인하고 있는데 정치가 게임을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고 나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은데 너무 불필요한 것들에 몰두하는 것 같아 불쾌하다. 공정에 대한 개념이 탑재된 청년들이 정치권에 많이 나오면 좀 더 나아질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안소현 기자 ashrigh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