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동행 반려견 마지막 길, '한가위' 어머니를 못 뵙다

11년 동행 반려견 마지막 길, '한가위' 어머니를 못 뵙다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6)
서울의 어머니, "올 거 없다 맛있는 거 많이 해 주거라"

기사승인 2022-09-12 06:30:02
‘가로’는 우리와 함께 사는 반려견이다. 골든레트리버 암컷으로 2011년 6월 19일에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나이 11살이다. 태어난 지 3개월쯤 됐을 때 딸 지우와 함께 승용차로 구미에 가서 데리고 왔다. 가로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차를 타고 여행을 해서 그런지 요즘도 차 타고 어디 가자면 좋아한다.

'가로'가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오른쪽은 '세로'. 가로보다 1년 먼저 우리 집에 와서 살고 있던 골든레트리버 수컷이었다. 가로랑 짝꿍으로 지내다 몇 년 전에 사고로 먼저 갔다.
가로는 작년까지 목줄을 한 채로 마당에서 살았다. 마음 같아서는 목줄 없이 집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싶었지만 집에 담장도 없고 마을 분들이 덩치 큰 가로를 무서워해서 그러지 못했다. 마당에 묶여있는 가로를 보고도 무서워서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목줄 한 가로를 보면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작년에 주변에 인가가 없는 산속으로 집을 옮기면서 마침내 가로의 목줄을 풀고 실내로 들였다. 지금은 우리 부부가 밥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에 가로도 같이 산다.

가로를 처음 집 안으로 들였을 때는 불편한 점도 있었다. 마침 가로가 털갈이할 때라 온 집안에 가로 몸에서 빠진 털 뭉텅이들이 돌아다녔다. 또한 가로는 대소변을 밖에서 보기 때문에 수시로 집 안팎을 들락거리면서 발에 흙 같은 것들을 묻히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조금만 실내가 더럽혀져도 청소기 돌리느라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그런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고 가로 몸도 예전처럼 험하게 더러워지지는 않았다.

'가로'의  외출. 머리에 예쁜 핀을 꽂았다. 가로가 서울에 가면 주로 아들이 데리고 나가 애견샵에서 목욕시킨 후 서울 구경을 시켜주곤 했다.
가로 입장에서도 말귀 못 알아듣는 인간들을 상대하느라 불편했을 수도 있다. 대소변이 마려워 밖에 나가자고 하면 “애가 왜 낑낑대지?”라고 뜬금없는 표정을 짓는 인간들을 보면서 답답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엄마라는 사람은 애를 키워봐서 몸짓까지 섞어서 몇 번 말하면 눈치를 채는데 아빠라는 인간은 둔해서 영 말귀를 못 알아듣더라”라고 생각했을 법 하다.

가로는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침대 곁으로 와서 내 귀에 대고 숨을 심하게 할딱거린다. 처음엔 “얘가 어디가 아픈가?”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가로는 새벽 한 시고 두 시고 제 기분 내킬 때 아무 때나 나를 깨운다.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한두 번 나가다 보니 나름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깊은 밤에 밖으로 나가면 낮에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이 있다. 가로가 볼일을 보는 동안 나는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조용히 앉아 하늘의 별을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우두커니 앉아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어젯밤에는 의자에 앉아 별구경을 한참 했는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라 하늘이 깨끗해 별이 유난히도 밝고 많았다. 며칠 전에는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우연히 내 옆으로 왔다가 내가 돌아보자 놀라서 달아났다. 고요하던 주변이 고라니의 놀란 발걸음 소리로 어수선해졌다.

'가로'의 최근 모습. 수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요즘 가로가 매우 아프다. 작년에 젖 부위에 조그만 종양이 생겨 동물병원에 갔었다. 늙은 개라 수술보다 항생제 투여를 권하기에 그렇게 해왔다. 다행히 그동안은 종양이 커지지 않고 잘 관리되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그 종양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하고 겨드랑이 부위에도 새로운 종양이 생겼다. 아픈 부위를 사진을 찍어 수의사에게 보냈더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가로 상태가 점점 나빠지더니 며칠 전부터는 뒷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지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한다. 어제까지는 내가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면 스스로 걸어 나가 대소변은 봤다. 그런데 오늘은 서서 대소변 보는 것도 힘들어 한다. 배도 점점 불러오고.

평소 같으면 추석 때 명절 쇠러 어머니와 아이들이 사는 서울에 가지만 이번 추석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도 서울에 오지 말고 가로 맛있는 거 많이 해주라고 하신다. 웬만하면 서울에 가서 서울 식구들과 작별 인사라도 시키고 싶은데 가로가 긴 여행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차를 타고 서울 가자면 그렇게 좋아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앞서가던 놈인데.

오늘 아침에 아내와 함께 가로를 안장할 장소를 마련했다. 살아있는 식구들이 잘 보이고 볕이 잘 드는 곳이다. 가로가 먼저 가면 새벽에 누가 나를 깨워줄까.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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