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주변에 인가가 없는 산속으로 집을 옮기면서 마침내 가로의 목줄을 풀고 실내로 들였다. 지금은 우리 부부가 밥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에 가로도 같이 산다.
가로를 처음 집 안으로 들였을 때는 불편한 점도 있었다. 마침 가로가 털갈이할 때라 온 집안에 가로 몸에서 빠진 털 뭉텅이들이 돌아다녔다. 또한 가로는 대소변을 밖에서 보기 때문에 수시로 집 안팎을 들락거리면서 발에 흙 같은 것들을 묻히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조금만 실내가 더럽혀져도 청소기 돌리느라 바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그런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고 가로 몸도 예전처럼 험하게 더러워지지는 않았다.

가로는 자다가 소변이 마려우면 침대 곁으로 와서 내 귀에 대고 숨을 심하게 할딱거린다. 처음엔 “얘가 어디가 아픈가?”라고 생각했는데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밖으로 나가자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가로는 새벽 한 시고 두 시고 제 기분 내킬 때 아무 때나 나를 깨운다.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한두 번 나가다 보니 나름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깊은 밤에 밖으로 나가면 낮에는 느낄 수 없는 고요함이 있다. 가로가 볼일을 보는 동안 나는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조용히 앉아 하늘의 별을 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우두커니 앉아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어젯밤에는 의자에 앉아 별구경을 한참 했는데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라 하늘이 깨끗해 별이 유난히도 밝고 많았다. 며칠 전에는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우연히 내 옆으로 왔다가 내가 돌아보자 놀라서 달아났다. 고요하던 주변이 고라니의 놀란 발걸음 소리로 어수선해졌다.

가로 상태가 점점 나빠지더니 며칠 전부터는 뒷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가는지 일어서는 것도 힘들어한다. 어제까지는 내가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면 스스로 걸어 나가 대소변은 봤다. 그런데 오늘은 서서 대소변 보는 것도 힘들어 한다. 배도 점점 불러오고.
평소 같으면 추석 때 명절 쇠러 어머니와 아이들이 사는 서울에 가지만 이번 추석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도 서울에 오지 말고 가로 맛있는 거 많이 해주라고 하신다. 웬만하면 서울에 가서 서울 식구들과 작별 인사라도 시키고 싶은데 가로가 긴 여행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차를 타고 서울 가자면 그렇게 좋아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앞서가던 놈인데.
오늘 아침에 아내와 함께 가로를 안장할 장소를 마련했다. 살아있는 식구들이 잘 보이고 볕이 잘 드는 곳이다. 가로가 먼저 가면 새벽에 누가 나를 깨워줄까.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브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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