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퇴짜 맞았는데…‘오징어 게임’이 이룬 반전

“비현실적” 퇴짜 맞았는데…‘오징어 게임’이 이룬 반전

기사승인 2022-09-14 06:00:33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정재(왼쪽), 감독상을 받은 황동혁 감독. AP·연합뉴스

2007년 영화 ‘마이 파더’로 데뷔한 황동혁 감독은 이듬해 경제난에 시달렸다. 연출하려던 작품이 엎어지고 생활비도 부족해 빚만 늘었다. 만화방에서 ‘라이어게임’ ‘도박묵시록 카이지’ 등을 보던 그는 문득 ‘내가 데스게임에 참여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런 상상을 토대로 탄생한 작품이 비영어권 드라마 최초로 미국 에미상에서 수상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이다. ‘오징어 게임’은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황동혁 감독)과 남우주연상(배우 이정재)을 가져갔다. 앞서 수상한 게스트상(이유미), 시각효과상, 스턴트퍼포먼스상, 프로덕션디자인상 등을 포함해 6관왕의 기쁨을 누렸다.

13년 전 “비현실적” 퇴짜 맞은 황 감독, 반전 드라마 쓰다

‘오징어 게임’이 처음부터 ‘꽃길’만 걸었던 건 아니다. 황 감독은 2009년 완성한 ‘오징어 게임’ 극본을 들고 영화사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비현실적이다” “기괴하고 난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10년 넘게 묵은 극본은 넷플릭스를 만나 날개를 달았다. 애초 영화로 기획한 작품을 9부작 드라마로 각색하느라 치아가 6개나 빠질 만큼 작업은 고됐다. 산고 끝에 지난해 9월 세상에 나온 ‘오징어 게임’은 세계를 뒤흔들었다. 넷플릭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공개 28일 동안 누적 시청 시간 16억545만 시간을 기록했다. 넷플릭스 역대 최고 기록이다. 지난 7일 LA는 ‘오징어 게임’의 영향력과 성과를 기념해 매년 9월17일을 오징어 게임의 날(Squid Game Day)로 제정했다.

‘오징어 게임’ 스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실직 후 도박에 빠져 빚더미에 앉은 성기훈(이정재)이 상금 456억원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한 뒤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야합과 배신이 판을 치고 돈으로 존엄성도 사고파는 세계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황 감독은 이날 시상식 후 열린 간담회에서 “(오징어 게임은) 커지는 빈부격차, 경쟁사회, 능력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며 “팬데믹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낀 문제였기에 공감대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제작사 싸이런픽쳐스의 김지연 대표는 “10여 년 전 ‘터무니없다’며 제작을 포기할 뻔했던 작품이 지금은 사람들에게 와 닿는 이야기로 읽힌다는 건, 이 사회가 좋게 변하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도 인간성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울림을 준 것 같다”고 봤다.

“변화하는 세계 시장…다양성은 시장 전략”

업계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이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가 가진 영향력을 인증해주는 지표”(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라고 봤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이력은 한국 콘텐츠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이정재가 ‘스타워즈’ 시리즈에 캐스팅되는 등 한국 배우들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계기도 마련해줬다”고 수상 의미를 짚었다. 또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을 이어가려면 창작자들은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 자본과) 투자 계약을 맺을 때도 좀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도록 각자 영역을 잘 관리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했던 영희(맨 오른쪽) 구조물이 에미상 시상식에 깜짝 등장했다. AP·연합뉴스

세계 콘텐츠 시장을 주름잡던 미국 할리우드에도 ‘오징어 게임’ 수상은 일대 사건이다. 에미상은 1949년 처음 만들어진 후 70년 넘게 비영어 작품을 후보로 지명하거나 아시아 국적 배우에게 상을 주지 않다가 올해 처음 장벽을 깼다. 황 감독은 상을 받으며 “비영어 시리즈의 수상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간담회에서 “‘오징어게임’을 국제 에미상이 아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 넣은 것은 (시상식을) 세계화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 의지를 이어가길 바란다는 의미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채널의 등장과 함께 영어권 제작사들이 주도권을 쥐고 흔들던 시대가 저물었다. 비영어권 소비자를 겨냥하거나 비영어권 창작자와 협업해야 하는 시대로 건너온 것”이라면서 “콘텐츠를 접하는 매체가 TV에서 OTT로 넘어오면서 문화적 다양성은 소비자를 공략하는 전략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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